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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인정한 농촌지도자, 제1회 상록수 공무원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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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인정한 농촌지도자, 제1회 상록수 공무원 표창
  • 윤두영 기자
  • 승인 2009.03.27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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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성농협 퇴임하는 박자흥 조합장

홍성농협의 역사를 일구어 낸 박자흥 조합장이 오는 4월 1일 정해명 조합장 당선자에게 바톤을 넘기고 퇴임한다. 우리 나이로 69세인 박 조합장은 그의 인생 반을 농업과 관계된 삶을 살아왔다. 농촌지도서 공무원 7년, 농협조합장 29년이 그의 삶이다. 그 36년을 농촌계몽과 농협경영 정상화에 온 정열을 불살랐다. 정열적인 농촌지도소 4H담당의 공적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1회 상록수 공무원’ 표창과 총무처장관의 ‘모범공무원’ 표창으로 인정받았다. 홍성농협 조합장과의 인연은 ‘사고 농협’을 맡아 달라는 홍성군농협조합장의 임명으로 출발했다. 임명을 받은 박 조합장은 6년에 걸쳐 ‘사고농협’인 홍성농협을 ‘건실농협’으로 일구고 퇴임했다. 그러나 3년 뒤, 다시 조합장 직을 맡아 달라는 9인 선거소위원회의 결정으로 홍성농협에 컴백했다. 컴백한 박 조합장이 쓴 홍성농협의 역사와 퇴임 소감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농촌지도소 공무원 7년, 홍성농협 조합장 29년 몸바쳐
부실 홍성농협을 현재의 홍성농협으로 키워낸 박자흥

-홍성농협 조합장직을 1977년부터 지금까지 29년간 맡아 오셨습니다. 흔한 말로 시원섭섭하실 텐데요?
섭섭하다기보다는 시원한 편이라고 할까요.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농협업무에 집착을 하다 보니 내 인생의 모두를 바쳐 지친 기분입니다
보람이 있다면 1976년 12월 6일 예고없이 군농협 조합장으로부터 조합장 임명을 받고 부임을 해보니 너무나 영세한 우리농협이 막막하여 즉시 야간교육 강화를 통하여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의 주인의식은 물론 출자를 왜 해야 되는지를 1개월간 교육하였더니 조합원들이 벼 출자를 비료출자(비료 한 포에 500원)로 전환하여 주어서 3년 후부터는 출자권유를 중지하고 매년 흑자경영을 하여 배당으로 출자를 넣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홍성농협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현재의 홍성농협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72년 출범한 홍성농협 37년 역사의 대부분을 조합장이 쓰셨는데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주신다면?
너무나 긴 세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기에 어떻게 비교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우선 재산현황을 비교해 보면 출자금은 1977년 1300만 원에서 2009년 현재 40억2000만 원으로, 재산규모는 장부가 기준 80억4500만 원으로 증가됐습니다. 각종 제 적립금도 159억6000만 원이나 적립됐습니다. 예수금은 1억 원에서 2003억 원으로, 대출금은 2000만 원에서 2500억 원으로, 연쇄점과 판매사업은 1500만 원에서 115억 원으로 늘어난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 조합장을 “전국 최장수 조합장”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충남에서 홍성 근교에 있는 이웃 서산농협 조합장이 현재 13선이고 태안의 근흥농협조합장이 9선, 저는 8선입니다.

-홍성농협을 반석위에 올려놓고 퇴임하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홍성농협의 임직원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으실 만한데요?
첫째, 모든 업무에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평소에 직원들에게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모든 일에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근무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둘째, 조합원과 고객을 부모님같이 섬기는 마음으로 최대 봉사를 발휘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조합원은 주인이요 나는 머슴이라는 마음가짐을 잊지 Q말자고 역시 강조해 왔습니다. 셋째, 직원간의 화합과 인화로 홍성농협을 최고의 신나는 직장으로 자리매김 됐으면 합니다.

-조합장님의 경영능력과 청렴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평가를 근거로 홍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 여론이 있는데 퇴임 후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부족한 이 사람을 잘 봐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 합니다. 저는 30여년간 농협에 미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경황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쩐지 쉬고 싶고 고삐 풀고 맘껏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비록 조합장 직은 떠나더라도 평생을 그렇게 산 것처럼 농민과 농촌, 그리고 농협의 발전을 위해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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