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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보도, 일본의 언론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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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보도, 일본의 언론 주목해야
  • 한관우 기자
  • 승인 2008.12.25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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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재난안전도시 홍성’만들기 프로젝트

▲ 일본 고베신문사 와다나베 편집차장이 고베대지진 발생시각에 멈춰 선 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당시를 잊지 않겠다는 기자정신의 상징이라고.
반복되는 재난, 어떻게 할 것인가<8>

해외언론의 재난보도는 내용이나 접근방식이 한국의 언론과는 상당히 다르고 체계화돼 있다. 실례로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일본 언론들의 접근방식이나 보도시각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할 때나 지난 1993년 7월 26일 서울발 목포행 아시아나 항공기가 전남 해남군 화원면 산자락에 추락 66명이 목숨을 잃은 최악의 사고를 보도할 당시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가 대표적이다. 항공기 추락 당시 치마를 입은 채 ‘헬기의 줄을 잡고 필사적으로 구조되던 빨강 팬티의 한 여인의 모습’이다. 당시 구조상황의 보도태도에서 피해자의 인격과 인권은 없었다. 국내의 방송은 그 장면을 수십 번을 재방했고, 신문은 칼라지면에 1면부터 도배를 했다.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는 당시의 구조장면과 보도 태도는 국내언론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반면 고베 대지진 당시 NHK를 비롯한 방송과 고베신문 등 언론에서는 사망자의 시신이나 처참한 모습은 방송화면이나 지면에 내보내지 않았다. 또 유족들이 오열하거나 통곡하는 모습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을 보여주는 방식도 근접 촬영이 아니라 헬기를 타고 무너진 고속도로 등을 비추는 등 가능한 한 자극적인 화면을 여과해 보도했다. 또 일본 뿐 아니라 다른 외국의 언론들도 사망자 숫자나 공식적인 발표 내용 이외에는 추측 보도를 자제한다는 원칙을 지켰고, 취재기자들도 포토라인을 엄격히 지켰다.

이렇듯 해외언론의 재난재해 관련 보도 태도는 비참한 장면을 내보지 않도록 규제함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나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만든 규정은 국내 언론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며 속보경쟁을 벌이는 행태가 계속되는 한 피해자나 유가족들의 인권침해를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언론도 체계적인 재난보도 준칙 등의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정보전달

고베신문사의 오노 사회부 차장과 이시자키 카츠노부 방재담당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난보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심정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라는 기자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노 차장은 “고베 대지진 당시 나는 3년차 기자로 스물다섯 살 이었다”며 “당시 집과 사고현장은 30분 거리인데 10시간 만에 도착했는데, 눈앞에는 시신이 즐비하고 유족들의 절규와 파괴된 건물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으며, 마을은 모두 불에 탄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어느 중학교에 가 보니 학교 안의 교실마다 관들로 꽉 차 있었다”며 “상황을 취재하기 보다는 유가족과 함께 울면서 슬픈 사연들을 취재했다”고 말했다. 고베신문사나 판매점들이 모두 붕괴된 상황에서 기사를 써도 전달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기자들은 기사를 쓰고, 신문을 제작해 직접 병원과 피난소 등에 무료로 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와다나베 편집부차장은 “당시 고베신문사도 파괴되고 자료도 분실됐지만 인쇄기능은 일부 파손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진발생 1년 전에 교토신문과 협정을 맺어 정전이나 시스템다운 등의 경우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 지진발생 이후 2주일 동안은 편집국 직원이 헬기를 타고 교토신문사에 가서 신문을 제작해 고베신문 기자들이 피해주민들에게 배포했다”고 소개했다.

비판자제 독자 의견수렴 우선

한편 대지진 당시 시민들은 미디어에 기대하는 게 많아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어디서 물을 구할 수 있고, 구호품을 어디서 받을 수 있으며, 사망자 명단 등을 확인해 보도하는 일이 취재활동의 주목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취재헬기 소리 때문에 구조를 요청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구조에 방해되는 상황도 벌어지기도 하고, 의사나 자원봉사자 보다 기자의 취재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외국인을 위한 외국어 자막방송도 병행했고 전국지 신문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전국 및 세계에서 구호품이 들어왔고 피해 주민들은 지역 언론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고베대지진의 경우 행정기관이나 고베신문도 그렇지만 행정조직원들도 일종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특히 ‘재난발생 후 원인을 따져봐야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비판은 자제하고 독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지역 언론의 본질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고베 대지진 13년이 지난 지금 부흥에 관련된 경제지표 등이 발표되고 있으며, 고베신문은 나머지 20%정도의 피해자 목소리를 담아 보도하려 한다고 전했다. <끝>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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