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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돌려앉히던 남편들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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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돌려앉히던 남편들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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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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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북면 상하리 돌부처와 구항면 보개산 범바위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마다 참으로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다. 민속신앙과 관련된 속설들도 많은데, 얘기를 듣다보면 조상들의 소박한 생각들을 느낄 수 있어서, 빙긋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민속박물관 등에 전시되고 있는 돌부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많은 수의 돌부처들이 코가 망가져 있다. 망치나 돌멩이로 때려서 코 부분을 떼어간 흔적이 역력하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아들 낳기를 원하는 여인들이 떼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부처의 코를 떼어다 가루 내어 복용하면 튼튼한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속설이 옛날부터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지방에도 마을에 있는 바위와 돌부처 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가 전하는 곳이 있다. 용봉산 아래 상하리 하산마을 들판 가운데에 조그만 돌부처 하나가 있었다. 이 돌부처는 조그만 동자상 비슷한 크기였는데, 장정들 서너 명이 얼마든지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무게였다.

이 돌부처가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동쪽 방향은 봉신리이고, 서쪽 방향으로는 상하리가 있다. 돌부처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면 봉신리 여인들이 바람을 피우고, 서쪽을 향하고 있으면 상하리 여인들이 바람을 피운다는 속설이 있었던 모양이다. 양쪽 마을 남자들은 돌부처가 자기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으면 밤에 살짝 가서 반대방향으로 돌려놓곤 했다. 어떤 때는 돌부처의 방향이 매일 이쪽저쪽으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양쪽 마을 여인들이 바람을 피웠는지 확인할 바는 없으나, 남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펼쳤을 돌부처 돌려세우기 작업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돌부처는 20여 년 전에 경지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행방을 알 수가 없다.

구항면 보개산 정상부근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앉아있다. 바위의 모습이 범을 닮았다고 해서 범바위라고 한다.

범바위는 산아래 건너마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마을 이름이 개몰마을이다. 풍수지리적으로 해석하면, 범이 개를 노려보며 해를 입히는 형국이다. 범에게 개들이 물려죽는다는 것은, 남자들이 일찍 죽고 혼자 사는 여인들이 많이 생긴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개몰마을 사람들은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범바위가 항상 꺼림칙했다. 생각 끝에 범바위를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집채만한 바위를 없앨 방법이 없었다. 땅속으로 묻을 생각이었지만 삽과 괭이로는 어림도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범바위의 방향을 약간 돌려놓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범바위 주변을 살펴보면 땅바닥을 파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범바위는 개몰마을을 정면이 아니고 약간 왼쪽으로 비켜 앉아서 바라보고 있다.
범바위로 인해서 개몰 마을에 실제로 피해가 있었을까? 필자가 궁금해서 물었으나, 설명하던 주민은 픽 웃음으로 대신한다. 더 이상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닐 듯싶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바위의 방향을 옆으로 돌려놓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조상들이 살았던 모습을 하나하나 살피다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무모하고 우직해보이기도 하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모습들을 전해준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가 있고, 교훈과 지혜와 슬기도 있다. 조상들이 물려준 값진 정신유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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