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1:23 (목)
“누군가 도울 수 있어 감사…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상태바
“누군가 도울 수 있어 감사…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 윤종혁
  • 승인 2022.10.03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이주민센터 이유진 통번역활동가

홍성이주민센터에서 통번역활동가로 일하는 이유진(30) 씨는 고려인 3세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키르기르스탄에서 태어났다. 유진 씨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조상들의 뿌리가 있는 대한민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할머니 부모님들의 고향은 부산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할머니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2016년 6월 키르기르스탄을 떠나 조상들의 뿌리가 있는 낯선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유진 씨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살기를 희망했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녔기 때문에 미국이 훨씬 익숙한 나라였다.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다면 지금 유진 씨는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진 씨의 시아주버니가 먼저 한국에 왔다. 예산군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유진 씨 가족도 시아주버니가 살고 있는 내포신도시에 정착했다. 고려인 3세인 남편이 유진 씨보다 1년 먼저 한국에 와서 예산군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유진 씨는 시어머니, 당시 4살이던 아들과 함께 홍성으로 왔다.

유진 씨는 키르기르스탄에서 대학을 다니며 법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다니며 나름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의 경력을 쌓았다. 그렇지만 키르기르스탄에서의 경력은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같은 뿌리라고 생각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유진 씨는 러시아어와 영어는 능통했지만 한국어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수준이었다.

아이가 아파도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 아이의 건강 상태를 의사에게 설명하기 너무 어려웠다. 은행 업무를 보기도 힘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당사자인 유진 씨도 문제였지만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아이도 문제였다. 아이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배운 후 1년 뒤 유치원에 다녔다. 유진 씨는 정말 죽어라 고생하며 한국어를 배웠다. 배우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한국어를 능숙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이유진 씨는 2021년부터 홍성이주민센터에서 통번역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2년 정도 한국어 공부를 한 유진 씨는 고려인들을 위한 통역 자원봉사를 했다. 고려인은 옛 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 국가에 살고 있는 한민족을 의미한다. 약 50만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 씨처럼 고려인 3세와 고려인 4세가 최근 한국행을 많이 택하고 있다.

2021년부터 홍성이주민센터에서 본격적으로 통번역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언어 문제로 쉽게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서 한국의 기본적인 규칙과 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의도치 않게 법을 어기는 문제까지 생기게 된다. 고려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돕기 위해 유진 씨는 일주일에 4일 홍성이주민센터에 출근해서 고려인들의 통번역을 돕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유진 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홍성뿐 아니라 천안과 당진, 아산 등 충남 곳곳에 있는 고려인들이 유진 씨를 찾는다. 특히 돈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받아야 할 임금을 제때 못 받는 경우도 많았고, 퇴직금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함께 가서 의사에게 몸 상태를 소상히 설명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백신 접종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고려인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출입국관리사무소, 홍성경찰서, 병원 등에서 유진 씨에게 통번역을 의뢰한다. 유진 씨는 아무리 바빠도 기꺼이 응한다. 그들의 어려움을 본인이 먼저 겪어 봤기 때문이다. “문제가 잘 해결된 후 상대방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 정말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제가 감사합니다. 고려인들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