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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의 향기가 어린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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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의 향기가 어린 산책길
  • 홍성문화원 조남민 사무국장
  • 승인 2022.07.2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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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 ‘독립의 길’을 가다 3

걷기: 역사인물길 3코스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오서산 상담마을, 15.6km)

내포문화숲길홍성센터 인근에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했다. 

내포문화숲길홍성센터는 홍성에서 광천으로 가는 홍성읍 남장리 언덕(마온고개)에 있다. 남산자락에 위치한 이곳 일대는 ‘남산산림욕장’으로 조성돼 지역주민들이 휴식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홍성센터 바로 위편에는 충령사(忠靈祠)가 있는데, 홍성지역을 위해 희생하신 보훈유공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매년 현충일을 기해 추념식을 올리고 있다. 전시 교육장으로 활용되는 충령관과 웅장한 충령탑, 국가유공자충훈탑, 월남참전유공탑, 만해 한용운 동상까지 세워져 있어 홍성이 충절의 고장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홍성읍 학계리와 구항면 마온리를 잇는 이 주변은 고조현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고쪼개’ ‘꽃조개고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마온아파트와 구항농공단지 뒤편에 있는 야트막한 숲길은 걷는 내내 편안하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 구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정맥꾼들이 걸핏하면 길을 잃고 헤매는 곳이기도 하다.

척괴마을에서 광천까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펼쳐진다. 
금북정맥을 따라 펼쳐진 내포문화숲길은 호젓하고 사색하기 편한 아늑한 산책길이다. 

금북정맥(錦北正脈)은 금강의 북쪽을 잇는 산줄기로, 태안 안흥진 바닷가에서 안성 칠장산까지의 약 240km 산길을 말하는데, 이런 정맥길을 다니는 산사람을 흔히 ‘정맥꾼’이라 부른다. 금북정맥의 홍성 구간은 홍북읍 중계리 쓰레기매립장부터 시작되어 월산, 남산을 지나 광천의 오서산 금자봉까지 꽤 긴 구간이 통과한다. 다른 구간은 등산로가 비교적 뚜렷하나 마온리를 지나고부터는 알쏭달쏭한 길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내포문화숲길과 겹치는 구간이 많아 비교적 정비도 잘 되어 있고, GPS도 발달되어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 홍성읍 학계리 마을로 내려오면 신성역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신성역은 장항선 비둘기호가 정차하면서 학계리, 청광리 주변의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기차역이었으나, 지금은 간이역으로 변해 간간이 시멘트만 실어 나르고 있는 중이다. 장항선 철로가 단선인 탓에 교행을 위해 머물기도 하고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서 10여 분 동안 멈추기도 했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내포문화숲길은 신성역 쪽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이어진다. 철로를 가로지르는 길이 50m 짜리 와계교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쭉 뻗은 철로를 감상할 수 있다. 이후 구항면 신곡리로 이어지는 길은 다소 지루하지만 아무런 부담이 없는 산책길이다. 왼편의 홍동면 세천마을을 지날 때는 왠지 모르게 아늑한 느낌이 든다. 느긋하게 한참을 걷다 보면 구항면 척괴마을을 1.7km 앞둔 지점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홍동면 원천리에 위치한 열녀 난향의 묘. 

이때 왼편으로 진행하면 금북정맥의 길이고, 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열녀 묘소를 하나 만나게 된다. ‘열녀는 평양기생으로 황규하의 애인이였다…’로 시작하는 비문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조선 숙종때 평양감사 황흠(黃欽)의 아들 황규하(1678~1718)도령과 기생 난향(‘만향’이라고도 함)이 사랑에 빠졌는데 부친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자, 도령은 과거급제 후에 찾아 오겠다 말을 남긴 채 그녀를 떠났다. 그 후 난향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후임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우물에 몸을 던졌으나 죽지 않고 살아나자 도령을 찾아 헤매다 홍주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황규하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라 그의 무덤가에서 시묘살이를 하다가 생을 마쳤다. 후세 사람들이 난향의 지조를 기억하며 비석을 세우고 황씨 종중에서 벌초와 제를 지낸다.’

비문에 적힌 빼곡한 글을 읽고 나니 이곳에 묻혀있는 난향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홍동면 원천리(중원과 세천을 합친 이름)에는 이렇듯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황흠의 묘는 세천마을에, 난향의 묘는 중원마을에 있다.)

춘향전과 달리 비극으로 끝난 이 이야기를 뒤로하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야 내포문화숲길로 이어진다. 어쩌면 난향도 많이 걸었을 이 길은 곧바로 척괴마을과 닿아있다. 옛날 이 마을에 키가 한 자 밖에 자라지 않는 괴이한 나무가 있어 ‘척괴(尺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광천까지는 전형적인 논길이 펼쳐진다. 땡볕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파릇한 벼의 놀라운 생명력을 관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광천읍 매현리에 이른다. 이곳은 ‘하누리’라는 농촌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광천라이온스클럽에서 잘 가꾼 벚꽃길이 광천읍 하상주차장에서 상담마을까지 이어진다. 저 멀리 오서산이 보인다.

이 마을의 언덕에는 홍성 12경 중 하나인 ‘그림 같은 수목원(옛 그림이 있는 정원)’이 새 주인을 맞아 영업을 재개했는데, 어쩐 일인지 지역주민들의 발걸음은 뜸하다. 정원 바로 뒤편에는 광천농공단지가 들어서 있고, 장고개(장현)에 있는 ‘한국 K-POP고등학교(옛 광천고등학교)를 지나면 광천읍내가 나타난다.

광천초에 편입된 덕명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는 커다란 오서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광천읍행정복지센터(읍사무소)와 오거리를 거쳐 광천 ‘쪽다리’에 이르면, 영혼을 울리는 소리꾼 ‘장사익’의 고향 삼봉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하천을 예전에는 ‘보통’이라고 불렀는데, 어른들은 쪽다리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은 보통 냇가에서 멱을 감곤 했다. 죽전저수지가 넘쳐서 광천읍내가 물바다가 됐던 90년대 이후론 쪽다리가 없어지고 지금은 튼튼하고 안전한 새 다리가 놓여졌다.

광천라이온스클럽에서 잘 가꾼 벚꽃나무 그늘은 하상주차장에서부터 오서산 입구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은 광천읍민들이 애용하는 건강 산책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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