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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름과 이야기가 전해 오는 백월산 주변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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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름과 이야기가 전해 오는 백월산 주변 고개
  • 김정헌 전 구항초 교장
  • 승인 2022.07.04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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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에 서려 있는 조상들의 숨결 5
홍성의 진산인 백월산 옆으로 지나가는 고개들은 구간마다 다양한 이름과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홍성읍 중심에서 4㎞ 서쪽 방향으로 해발 394m 높이의 백월산이 자리잡고 있다. 산의 중심부는 홍성읍과 구항면의 경계를 이루며, 북쪽 끝머리로 홍북읍과 예산군 덕산면과도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백월산은 옛 기록에 ‘일월산’, ‘월산’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 오며 홍성의 진산이다.

백월산은 홍성의 진산답게 역사적으로 홍성지역 제천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온 신성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월산 주변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특히 백월산 옆으로 지나가는 고개들은 구간마다 다양한 이름과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홍주종합경기장 옆으로 지나가는 고개는 ‘거북재’로 부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고개 모양이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거북재에는 명당터로 알려진 산소가 전해오는데, 이곳에 산소를 쓴 집안이 당대 발복한 자리라고 한다. 거북재의 원래 모습은 홍주종합경기장과 주변 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거북재를 지나서 용화사가 있는 고갯마루까지는 ‘월산고개’로 부른다. 월산고개라는 이름은 백월산자락의 월산마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월산고개를 지나서 고갯마루부터는 이름이 ‘미륵댕이고개’로 바뀐다. 다른 이름으로는 ‘미력골고개’, ‘시양절고개’ 등으로도 부른데, 모두가 사찰과 관련이 깊다.

월산고갯마루는 홍성읍 월산리와 홍북읍 중계리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며, 이곳에 용화사라는 사찰이 있다. 용화사는 수덕사 말사이며 일제강점기 시절에 작은 암자로 시작된 사찰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 사찰이 소실됐고, 30여 년 전에 다시 세워졌다.

용화사 경내에 자연석으로 된 미륵.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빈다.

용화사 경내에는 자연석으로 된 미륵을 모시고 있는데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자연 미륵 앞에 놓인 작은 돌을 손으로 빙빙 돌리며 소원을 빌면, 어느 순간에 작은 돌이 바닥에 자석처럼 착 달라붙는데, 이것은 소원이 이뤄진다는 미륵의 대답으로 여겼다. 이런 이유로 자연미륵이 유명했고, 용화사가 위치한 골짜기도 ‘미륵당’ 또는 ‘미륵골’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미륵댕이고개’, ‘미력골고개’, ‘시양절, 고개’ 등의 이름 유래도 자연 석불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댕이고개를 내려가서 홍천 1차 문화마을부터는 다시 오르막 고개가 이어진다. 이곳 오르막 고개는 ‘달라지고개’로 부른다. 달라지 고갯마루에는 쓰레기매립장이 있고, 홍북읍 중계리와 덕산면 낙상리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옛 기록에는 까치고개 또는 작현(鵲峴) 등으로도 전해온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까치고개’는 생소한 이름이며 ‘달라지고개’로 많이 부르고 있다.

달라지고개라는 이름 유래가 흥미롭다. 내용이 조금 외설스럽기는 하지만,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전해 오는 대로 기록해본다. 옛날 한여름에 장성한 남동생과 누나가 홍성장에서 낫과 호미 등 농기구를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 고갯마루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두 남매는 주변 바위 옆으로 급하게 몸을 피했다.

남동생이 소나기를 피하며 잠깐 옆에 서 있는 누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비에 흠뻑 젖은 누나의 얇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 풍만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순간 동생은 누나의 비에 젖은 모습을 보며 혈육이 아닌 성숙한 여인으로 느껴졌다. 남동생은 순간적으로 죄스런 생각이 들면서 누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혈육인 누나의 몸매를 보며 욕정을 느낀 자신이 한심했고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홍성장에서 사들고 오던 낫으로 자신의 발기된 성기를 내려쳤고, 피를 철철 흘리며 그 자리에 쓰려졌다.

시간이 흐르며 세차게 내리던 소낙비가 그쳤다. 누나는 다시 길을 재촉하며 보이지 않는 동생을 찾았다. 바위 반대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숨이 끊긴 동생을 보고 상황을 직감했다. 쓰러진 남동생을 끌어안고,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죽기는 왜 죽어! 한 번 달라고나 해 보지 않고….”하며 대성통곡 했다고 한다.

이후로 고개 이름이 ‘달라지고개’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와 비슷한 지명과 내용을 담은 전설이 많이 전해온다. ‘달래강’, ‘달래고개’ 등의 지명이 있으며, 대개 비슷한 유형의 줄거리들이다. 이와 같은 전설 속에는 인간의 본능과 함께 유교적인 윤리의식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다. 혈육이나 가족 간에 건전한 생활 의식을 강조하는 교훈이 담긴 전설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한편 달라지 고갯마루를 넘어가면 갈산면 신안리 구성마을로 내려가는 참나무쟁이고개가 있다. 서산·해미에서 대기티고개를 넘어와서 홍성으로 통하던 큰 고개였다. 이응노기념관이 있는 홍천마을에서 낙상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한짐재라고 불렀다. 무거운 나뭇짐을 메고 넘나들던 가파른 고개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없어진 고갯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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