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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만해 한용운을 만나는 ‘만해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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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만해 한용운을 만나는 ‘만해기념관’
  • 윤종혁
  • 승인 2022.07.0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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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만해의 길을 찾아서’ 2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를 불꽃같이 살다간 한용운 선생.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난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왜곡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면서 언론, 교육 활동을 활발히하며 불교의 사회개혁론을 주장했다. 또한 민족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1918년 11월부터는 불교 최초의 잡지인 <유심>을 발행했고, 1919년 3·1만세 운동 당시 독립선언에 참여해서 체포당한 뒤 3년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났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 언론활동에 참여했다. ‘만해의 길을 찾아서’ 기획취재를 통해 만해 한용운이 누구인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고, 자라나는 홍성 지역 청소년들이 만해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남한산성에 자리한 만해기념관. 전보삼 관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사립박물관이다.

<님의 침묵> 초간본 포함 만해 관련 자료 전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은 연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민족자존의 역사와 수려한 자연환경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에 민족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을 기념하는 ‘만해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2002년 경기도 테마박물관으로 지정됐다.

만해기념관은 당시 신구대학 철학과 교수이었던 전보삼 관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사립박물관이다. 남한산성 행궁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전보삼 교수는 1981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 처음 만해박물관을 개관했다. 1991년 현재의 자리로 만해기념관 이전을 추진해서 1998년 5월 만해기념관을 재개관했다.

기념관은 대지 1719㎡에 연건평 396㎡(지상 2층) 규모로 만들어졌다. 전통 한옥의 건축 양식을 현대에 조화시켰다.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교육실, 세미나실, 야외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해기념관 경내에 들어서면 눈이 익은 ‘님의 침묵’ 중 ‘나룻배와 행인’의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상설전시실에는 만해의 삶이 담긴 스토리를 따라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다. △뜻을 세우다 △불교인으로의 지향 △3·1운동의 선봉에 서서 △침묵의 미학 △설중매화 △심우장의 정절 △만해가 떠난 그 후 등 7개 소주제로 나눠 전시돼 있다.

1991년 현재의 자리로 만해기념관 이전을 추진해서 1998년 5월 만해기념관을 재개관했다. 만해기념관 앞 한용운 흉상.

만해기념관 주요 소장품으로는 친필 유묵 및 <님의 침묵> 초간본을 비롯해 200여 종의 다양한 <님의 침묵> 판본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불교서적과 낡고 오래된 시집, 친필로 된 시조와 서문 등을 보고 있노라면 만해 한용운의 숨결이 느껴진다. <님의 침묵> 초간본의 경우 1978년 고서 경매장에 나왔던 책이었다. 전 관장이 1년 동안 교수 월급을 모아 구한 귀한 자료이다.

만해기념관의 소장품 중에는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추서한 건국공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도 있다. 그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 시집과 3000여 점의 학술논문 및 연구 자료 등이 소장돼 있다. 아울러 만해의 유품을 비롯한 각종 연구자료 등 전시관에 있는 자료 중 전보삼 관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전 관장은 “심우장에 만든 만해기념관은 공간이 좁아서 운영하기에 여러모로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남한산성에 만해기념관을 만든다면 만해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최대의 성으로 조선의 호국 승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국정신의 상징적 장소이다. 이곳에 만해기념관을 재개관함으로써 호국정신과 민족자존의 정신이 함께 빛나는 장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만해학교’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

만해기념관은 다양한 콘텐츠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대표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만해학교’이다. 가족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독립 정신, 나라사랑 정신과 문학 정신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다양한 매체로 만날 수 있다. 강좌뿐 아니라 토론회와 세미나, 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면서 만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다. △시화족자 만들기 △시회전등 만들기 △시화부채 만들기 △시화텀블러 만들기 △한용운 선생 친필 탁본 체험 △한용운 선생과 떠난 역사여행 등을 진행한다. 강릉에서 왔다는 김서은 씨는 “아이들에게 만해 한용운 선생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만해기념관을 찾았다. 한용운 선생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만해기념관에서는 매년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3·1운동과 민족대표 특별전’ , ‘만해 한용운과 옥중시 전’, ‘캘리그라피 작가 초대-침묵에 말을 걸다’,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 사람들’, ‘만해를 노래하다’ 등 다양한 특별전시를 통해 만해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전보삼 관장은 “만해기념관은 한용운의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자, 만해의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자 문화 쉼터”라고 말했다.

만해기념관 전보삼 관장. 전 관장은 만해의 정신이 잘 계승되기 위해서는 홍성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해의 정신, 홍성에서 잘 이어지길”
만해기념관 전보삼 관장

1981년 만해기념관을 개관하고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긴 세월 기념관을 운영해 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님의 침묵>을 읽고 또 읽던 소년이 청년이 되어 만해의 흔적을 찾아 자료를 모았다. 만해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심우장에 세를 얻어 만해기념관을 만들었다. ‘만해의 사상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그의 인생은 만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 됐다. 1995년에는 강원도 인제 백담사에 만해기념관이 만들어지는데 앞장섰다. 2006년 만해의 고향인 홍성에 ‘만해 문학체험관’이 문 열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돌이켜보면 저의 인생은 만해와 함께한 인생이었습니다. 오늘의 나는 만해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60년 동안 발품을 팔아 만해와 관련한 자료를 찾고, 유물을 모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왜 만해인지를. 만해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고, 불교 사상가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해가 태어난 홍성은 정말 복 받은 고장입니다. 만해의 정신과 사상이 홍성에서 제대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전 관장은 홍성군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제풀이를 위해 교과서에서 배우는 만해가 아닌 만해가 누구인지를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홍성학과 충남학을 배우듯 만해에 대한 교육이 중요합니다. 피상적으로 만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만해의 삶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만해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을 키우는데 홍성군이 앞장서 주길 바랍니다.”

● 전보삼은… △1950년 강원 강릉 출생 △한양대 화학공학과 학사 △동국대 철학박사 △만해기념관장 △한국박물관협회장 △내셔널트러스트 재단 이사 △경기도박물관장 △한국문학관협회장 △한용운 사상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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