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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들이 간직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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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들이 간직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 홍성신문
  • 승인 2022.06.1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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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는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신의 위대한 질문>이란 두 권의 책을 썼다. 이 두 권의 책을 읽다보면 제8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군수, 도의원, 군의원들이 깊이 새겼으면 하는 네 가지 마음가짐, 또한 우리 모두가 같이 간직하면 좋을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네 가지 셀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철학자 공자는 그의 제자인 중궁이 중국 철학의 기틀인 ‘인(仁)’에 대해 묻자, 인은 그 누구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큰 손님을 대하듯 모시는 것이며 사람을 대할 때 신에게 큰 제사를 드리듯이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다. 이어서 ‘인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인간 마음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해 인간의 선과 악을 넘어 자기 자신이 소멸되고 한없는 경외심이 넘치는 단계를 숭고함이라 했다. 숭고함은 ‘셀 수 없는, 가름할 수 없는, 경계가 없는’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용어는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사무량심(四無量心)’이 됐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명상을 통해 이 네 가지를 습득했다고 한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첫 번째 마음은 한자 ‘자(慈)’로 표현한다. 자(慈)는 참된 사랑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어의 ‘헤세드(hesed)’나 그리스어 ‘아가페(agape)’에 해당한다. 자신이 아무리 최선의 선의를 보인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慈)가 아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깊이 살펴야 상대방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한자 ‘慈’를 분석하면 위에 ‘가물 현(玄)’이 두 개 겹쳐 있고, 아래에 ‘마음 심(心)’이 있다. 나와 상대방의 마음이 가물가물해 하나가 된 ‘신비한 합일’의 상태를 의미한다. 자(慈)는 상대방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그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까지 포함하는 큰마음이다.

두 번째 마음은 한자 ‘비(悲)’다. 비(悲)는 상대방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마음과 능력으로 영어로는 ‘컴패션(compassion)’이라 한다. 컴패션은 상대방의 고통(passion)을 기꺼이 함께(com) 나누려는 마음이다. 우리가 비(悲)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慈)처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걱정, 근심, 슬픔,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비(悲)를 보여줘야 한다. 그 사람 옆에 앉아 그의 슬픈 감정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마음은 ‘희(喜)’다. 희(喜)는 상대방이 행복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방이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이다. 상대방이 불행을 당했을 때 함께 그 불행을 슬퍼하기는 쉬워도,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마음은 ‘사(擒)’다. 사(擒)는 마음에 집착이 없고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 고생 끝에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 볼 때 느끼는 그 감정이다. 눈앞에 탁 트인 광경이 펼쳐지는 이유는 정상에 올라온 사람의 시선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는 마음이다. 또 사람의 배경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배철현 교수가 말 하고자 하는 네 가지 마음가짐으로 참 된 사랑과 큰 마음인 자(慈), 상대방의 고통을 기꺼이 함께 하려는 마음 즉 비(悲), 상대방이 행복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희(喜), 사람의 배경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 사(擒), 석가모니가 명상을 통해 습득했다는 이 사무량심을 이번 당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평생 명상을 통해 습득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나 손사래를 치지말자. 완벽한 습득은 아니더라도 노력하는 모습 속에 홍성군민들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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