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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함께 한 60년 인생…“홍성을 화훼 수출 중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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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함께 한 60년 인생…“홍성을 화훼 수출 중심지로”
  • 윤종혁
  • 승인 2022.04.11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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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면 유송리 대생화훼농원 안대윤 대표
안대윤 대표가 꽃의 성장 상태를 살피고 있다. 7000여 평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언제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서울서 45년 화훼 유통으로 승승장구

홍성군 은하면 유송리에는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대생화훼농원이 있다. 1만여 평의 대지에 만들어진 7000여 평의 시설하우스 안에는 공처럼 동그랗고 아름다운 다알리아, 화려함을 자랑하는 아네모네, 시원한 느낌이 물씬 나는 델피니움 등이 재배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안대윤(81) 대표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홍성 화훼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서울에서 태어난 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꽃을 가까이했다. 고향인 응암동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꽃 생산지였다. 부모님도 꽃을 재배했기 때문에 꽃은 안 대표의 친구이자, 집안 경제를 책임져주는 귀중한 보물이었다. 간헐적으로 꽃 장사를 하다가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꽃 장사를 시작했다. 꽃과 함께 한 시간이 60여 년 됐다.

농장에서 꽃을 사서 밤에 종로 노점에서 꽃을 팔았다. 염천교 다리 위에서도 판매를 했고, 남산 육교에서도 장사를 했다. 부부가 열심히 노력한 끝에 남대문시장 안에 가게를 마련했다. 화훼 유통으로 자리를 잡으며 장사가 잘되다 보니 주차 공간이 부족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상가로 이전했다. 그 때가 1982년이었다. 이후 화훼 산업이 전국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안대윤 대표의 사업도 승승장구했다. 45년 동안 화훼 유통을 하면서 많은 것을 일궈냈다.

쓰러져가는 하우스 화훼생산단지로 탈바꿈

아들에게 사업을 넘겨주고 화훼 유통에서 손을 뗀 안 대표는 노후를 즐기기 위해 관광농원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전국 여기저기를 다니며 적합한 땅이 어디에 있는지 물색했다. 지금의 화훼농원은 당시 방울토마토 생산을 목표로 단지를 조성했던 곳이다. 경영 부진으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폐쇄됐다. 관광농원 부지를 찾던 안 대표에게 주변 사람들이 매입을 간곡히 권유했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2005년 고민 끝에 화훼생산단지로 조성할 것을 결심하고 투자를 했다. 시련의 시작이었다.

안 대표가 투자를 하고 홍성 동업자들이 운영을 맡아 생산과 관리를 하기로 했는데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2012년까지 수 억원 적자가 발생했는데 동업자들은 나 몰라라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까지 당하기도 했다. 빚 때문에 농원을 빼앗길 위기까지도 겪었다. 서울 강남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급한 불을 꺼서 농원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는 것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2012년 5월 안 대표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인과 함께 홍성으로 내려왔다. 농원을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가 72세였다. 모두들 비웃었다. 70세가 넘어 노인이 1만여 평의 농원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안 대표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황폐했던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꽃을 피워냈다. 농원은 조금씩 화훼생산단지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대생화훼농원 안대윤·장정자 부부. 부부는 1년 내내 꽃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농촌 인력 부족 심각…지원과 관심 필요”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매출이 조금씩 나아졌다. 수익이 생길 때마다 시설 개선에 투자했다.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와 식당도 새롭게 만들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일해서 2019년에는 매출이 10억원을 넘겼다. 빚을 갚으며 한숨 돌릴까 했더니 코로나19 쓰나미가 화훼산업을 덮쳤다.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인력난에 부딪혔다.

“전국적으로도 개인이 이 정도의 생화를 키우는 곳이 몇 안 됩니다. 생화는 적기에 수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시설을 갖춰서 이제는 생산에 자신 있는데 사람이 없다보니 속수무책입니다. 농촌 인력 부족이 계속되면 농촌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대생화훼농원에서 생산된 꽃은 서울과 광주, 부산 등 전국 곳곳으로 일주일에 3번 출하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꽃을 적기에 출하하기 위해 다양한 품종을 끊임없이 심고 가꾼다. 안대윤 대표는 홍성을 화훼 수출 중심지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수출을 통해 판로를 넓히고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꽃은 이제 모든 행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소비자가 어느 때 어떤 종류의 꽃을 좋아하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서 이에 따른 품종을 심고 적기에 출하해야 합니다. 유통을 통해 쌓은 경험이 화훼산업을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85세까지는 꽃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꽃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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