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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제 역할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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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제 역할 하고 싶어요"
  • 신혜지 기자
  • 승인 2022.04.04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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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박현미 교장

“25년 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풀무학교에 올 것 같습니다. 풀무에 온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3월 2일 자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새로운 교장이 부임했다. 25년 근무한 교사, 타지에서 와 홍성에 뿌리내린 첫 여성 교장, 이 키워드의 중심에는 박현미(50) 교장이 있다.

박현미 교장은 자신이 그저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했다. 25년간 몸담은 학교에서 교장으로 부임해 아직까지는 자리가 무겁고 어색하기만 하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현미 교장이 어쩌다가 풀무학교의 교장까지 맡게 됐을까?

25년 근무한 학교의 교장 되다

박현미 교장이 처음 풀무학교에 온 것은 1998년 3월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좋아한 그녀는 공주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박달원 지도교수로부터 풀무학교에서 수학교사를 찾는데 가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했는데 두 번째 연락을 받고는 오겠다고 결심했다.

“그래도 처음 풀무학교에 왔을 때는 ‘수학을 하면서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 와서 더 좋아지기도 했고요. 자유로운 면이 많은 학교다 보니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20대 중반에 풀무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박 교장은 처음에는 풀무학교와 자신이 맞지 않아 굉장히 무겁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자신은 너무 평범한데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너무 크게 느껴지기만 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잘해야 된다는 압박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박현미(오른쪽 네 번째) 교장과 풀무학교 학생들. 2018년도에 도예수업 중 쉬는시간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박현미
박현미(오른쪽 네 번째) 교장과 풀무학교 학생들. 2018년도 도예수업 중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박현미

풀무학교 교장은 일반 교사와 똑같이 수업에 들어간다. 박 교장은 올해 3학년 학생들의 ‘수학과제탐구’, ‘진로와 직업’ 수업을 맡았다. 풀무학교는 졸업을 창업이라고 부르는데, 창업을 위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연관된 논문을 작성한다. 이러한 논문 작성을 위한 수업을 맡고 있다.

박 교장은 풀무학교가 ‘수평적인 학교’라고 말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전체 회의에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때로는 학생들이 더 배려심이 있는 의견을 제시할 때가 있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러한 회의를 통해 풀무학교 학생들은 스마트폰 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전원 기숙사 생활이므로 24시간 동안 학교에서 지내는 특징이 있는데, 수업이 끝나도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게 더욱 놀라운 점이다.

‘교사·학생·마을과 잘 지낼 수 있길’

올해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선배 교사들이 모두 퇴임하면서 박 교장의 고민도 깊어져 간다. 새로운 교사들이 오면서 새로운 숙제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학교와 마을과의 관계이다. “새로운 선생님들이 왔다고 해서 아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보단 풀무학교의 본질이 바뀌지 않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과 학교의 정신, 마을, 농사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학교와 마을이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 큰 숙제인 것 같아요.”

박현미 교장은 10대 후반의 아이들, 그리고 함께하는 교사들과 여러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교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다짐은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인간 박현미는 자유로운 영혼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박 교장이 처음 풀무학교에 왔을 때는 ‘딱 2년만 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홍성 토박이인 선우주식회사 유재중 대표와 결혼해 아예 홍성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홍성에 자리를 잡은 것을 후회하지 않냐는 물음에 그녀는 “저는 원래 새로운 게 더 좋고 익숙해진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가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저는 어디 살았어도 그랬을 것”이라며 웃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고등학교 가지 말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가 ‘엄마는 철이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어느 날 아들은 “엄마는 이상주의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저는 이상주의자가 맞아요. 꿈을 꾸면서 사는 것이 좋죠. 그러면 어때요.” 꿈을 꾸면서 사는 그녀가 만들어 갈 풀무학교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박현미 교장의 임기는 4년이다.

홍동면에 위치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경. 1958년 4월 23일 개교했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홍동면에 위치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경. 1958년 4월 23일 개교했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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