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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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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죄가 필요하다
  • 홍성신문
  • 승인 2021.11.27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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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민간인희생자홍성군유족회장

설한풍 눈보라에 하도만 시달려서 / 잎 다진 무궁화 줄기마저 꺾이었다 / 봄바람 단비 오면 거름부터 주리라

위 글은 6·25 발발 직후 용봉산과 오서산 입구 담산리에서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던 어느 국민보도연맹원의 죽음 직전 심경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글이다. 당시 홍성경찰서 상무관에서 발견됐다. 첫 문장은, 설한풍 눈보라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온 개인사를 회상하며 평범한 농민으로 살고 싶은 착잡함을,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잎이 지고 줄기마저 꺾인 나라꽃 무궁화로 표현한 듯하다. 그러나 캄캄한 밤중 같은 현실 속에서도 봄이 온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거름을 주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충남서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중 상당수는 좌익사상과 무관하게 좌익단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거나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모르고 가입한 농민들로 주로 20-40대 청장년층이었다’고 공식 기록하고 있다.

보도연맹은 1949년 10월 2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한때 좌익활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에 대한 자수기간을 설정하고 대대적인 자수작업을 실시했다. 충청지방 검경당국은 이에 더해 한 달간 추가로 자수기간을 연장해 독려했다. 충청지방 자수기간이 끝나갈 무렵 충남도 전체 자수자는 3902명이었다. 시군별 숫자는 태안 29명, 서산 75명, 예산 56명, 청양 234명 등이며 많은 지역이라야 온양 396명 등이었다.

그런데 홍성에서만 유독 1380명으로 충남도 전체의 35.4%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홍성지역 보도연맹원 희생자수를 100여 명으로 보고 있지만 이 같은 자수자 수로 보아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연맹은 공식적으로 이승만 정부산하의 분명한 반공단체다.

보도연맹 강령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를 절대 지지 육성하고, 북한 괴뢰정권을 절대 반대 타도하며,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배격 분쇄한다는 등 오늘날 반공단체의 이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을 전원 소집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이 들어오면 보도연맹원들이 혹시 협조할지 모른다는 짐작만으로 전원 학살하고 후퇴했다. 자수하여 전향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여 홍성군민 1380명 보도연맹원들은 정부 말만 믿고 따라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확인이나 재판절차도 없이 불법으로 학살한 것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1380명의 명단을 찾아내어 국가차원에서 영령들을 위로, 해원하는 길을 열어야 될 것이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홍성군유족회는 2005년 창립한 후 16년 동안 민간인 희생자 639명을 찾아냈다. 그중에서 제 1차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인정한 63명이 법원의 1심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2차로 60여 명이 제 2차 진실화해위원회의 인정을 받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두 차레 모두 합쳐봐야 150명도 안 된다.

전쟁의 상처엔 좌우가 없다. 피도 붉은 피는 똑같다. 좌우로 나뉘어 서로 할퀸 상처, 국가로부터 사죄를 받아야 한다. 아직도 봄바람 단비가 오지 않았다. 지금 거름 주는 사람은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과제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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