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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동안 마을 건강 지켜온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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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동안 마을 건강 지켜온 샘
  • 홍성신문
  • 승인 2021.11.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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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생명수, 마을 샘을 찾아 19
복원된 공숫골 샘 모습.
물이 철철 넘쳐 흐르는 샘물 모습.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400여 년 된 샘이 전해오고 있다. 이 샘은 장수샘으로도 유명한데, 400여 년 동안 마을의 생명수 역할을 해 왔다. 공리마을은 흔히 공숫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옛날 지방관청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마을 안에 공수전(公須田)이라는 토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공숫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온다.

공숫골샘은 공리 새뜸에서 화리마을로 넘어가는 길가에 위치해 있다. 샘이 있는 새뜸 앞 건너편으로는 두암산이 있고 뒤쪽으로는 이름 없는 야산이다. 마을에서는 샘이 있는 새뜸 뒷산을 새뜸산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새뜸산에 왕소나무가 울창했지만 지금은 모두 베어내고 몇 그루만 남아있다. 공숫골 샘의 발원지는 새뜸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로 추측하고 있다.

옛날부터 공리마을에는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았는데,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샘물 덕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동네마다 사람들이 북적이던 시절에 공리마을 전체 100여 호가 공숫골 샘물을 이용했다. 매일 아침이면 샘 주변으로 물지게를 지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곤 했다.

특히 공숫골 샘이 있는 위치는 옛날 구항에서 갈산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시원한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샘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쉬어가는 쉼터 역할도 했다. 장을 보러 다니는 보부상들은 샘물을 마시고 잠시 쉬면서 물건 값 등의 정보교환을 하기도 했다.

공리 주민들이 어쩌다 외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공리 샘물은 아직도 물이 철철 흘러넘치느냐?”고 샘의 안부를 물을 정도였다. 이처럼 공숫골 샘은 보부상들과 나그네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마을의 상징이었다.

한여름에는 마을 공동 목욕탕 역할도 했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에 마을사람들은 밤마다 샘으로 몰려왔다. 남자가 먼저 목욕을 하고 가면, 깊은 밤에는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목욕을 하곤 했다. 한여름에도 물이 차가워서 손을 오래 넣을 수 없었다. 땀띠가 난 사람들도 한두 번 목욕을 하고 나면 금방 가라앉았다.

공리 이장 김기섭 씨는 어려서부터 공숫골 샘을 옆에서 직접 지켜보며 살아왔다. 어른이 되고 마을 이장을 역임하면서도 샘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한 때 마을길을 넓히고 포장도로를 개설하면서 공숫골 샘이 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설치되어 마을 공동샘의 필요성이 사라진 시대 탓도 있었고, 길을 넓히는데 걸림돌이 되므로 사업시행자들은 샘을 메우기로 결정했다.

김기섭 이장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숫골 샘을 지켜내고, 옛날보다도 더 화려하게 복원할 것을 주장했다. 김기섭 이장과 뜻을 함께 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합쳐져서 공숫골 샘은 옛 모습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 공숫골 샘이 있던 자리는 논두렁 옆이었다. 샘의 깊이는 2미터 정도 되었고 사각형 모양이었다. 현재는 샘을 복원하면서 원형으로 바뀌었고 비가림막과 주변 시설을 깔끔하게 정비하고 쉼터도 만들었다. 공숫골 샘 옆으로 지나가는 포장도로를 높여놓은 관계로, 샘이 도로 아래로 푹 파묻힌 모습이 되어서 약간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숫골 샘은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의 현실에서 외부인의 귀농과 마을 인구 증가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숫골 샘 옆쪽에는 현직에서 은퇴하고 외지에서 귀농한 부부가 살고 있다. 이 부부가 공리 마을에 정착한 이유는 공숫골 샘이 큰 역할을 했다. 잘 정비된 샘과 샘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모습을 보자마자 좌고우면하지 않고 주변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지었다.

공숫골 샘물이 철철 넘치는 모습을 보고 옛것을 잘 보존하고 지켜나가는 마을주민들의 정신적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수준 높은 마을에서 정착하면 제2의 인생이 축복 받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숫골 샘은 지금도 변치 않고 맑은 물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 옛날처럼 식수로 사용하는 역할은 줄어들었지만, 개인과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공숫골 샘물을 사용한다. 날이 가물어서 주변 논에 물이 마르면 공숫골 샘이 농업용수를 제공한다. 공숫골 샘은 마을의 정신적인 지킴이 역할과 생명수 역할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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