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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마을 남구만 생가터 추정지 우물과 전주사댁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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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마을 남구만 생가터 추정지 우물과 전주사댁 우물
  • 홍성신문
  • 승인 2021.06.1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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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생명수- 마을 샘을 찾아
남구만 탄생 추정 집터.

우리 고장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에는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생가터 추정지와 전주사댁에 각각 오래된 우물이 전해온다. 두 곳 우물은 생긴 지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남구만은 일반인들에게 ‘동창이 밝았느냐’는 시로 익숙하게 알려진 인물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 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 시조는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의 작품이다. 당대의 권세 높은 문신으로서 문장에도 능했던 남구만의 고향이 홍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성에서 남구만과 연고가 있는 지역은 갈산면 와리 원와마을과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이다. 이 두 마을은 옛날 행정구역이 결성현 관할이었다. 이런 이유로 옛 기록에는 남구만의 고향이 결성이라고 전해온다.

남구만의 문집 <약천집(藥泉集)> 제25권에는 ‘절순헌기(折筍軒記)’라는 글이 실려 있다. 절순헌기는 1700년(숙종 29)에 남구만의 나이 71세 때 지은 글이다. 절순헌기의 내용 속에는 결성 구산(龜山, 현재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로 추정)과 용와리((龍臥里, 현재 갈산면 와리 원와마을로 추정)가 등장한다.

절순헌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639년에 남구만의 할아버지 남식이 고을의 현감에서 물러난 뒤에 결성의 구산(龜山)에서 한가롭게 지내던 중에, 아버지 남일성을 위해 용와리(龍臥里)에 있는 하씨(河氏)의 집을 샀다. 집의 규모는 비록 질박했으나 그런대로 지낼 만 했으며, 동쪽 모퉁이에 두 칸의 대청을 이어 짓고 겨울에는 남쪽 창문을 열어 햇볕이 들게 하고 여름에는 북쪽 문을 열어 주변 경치를 바라보곤 했다. 할아버지는 숙부인 남이성에게 명하여 용천별서기(龍村別墅記)를 짓게 했는데, 산천과 못과 포구의 아름다운 경치를 대단히 칭찬했다.

아버지 남일성이 뜰 앞에 대나무를 심었으나 미처 숲을 이루지 못해 초여름에 나온 대순이 겨우 10여 개였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구산으로부터 이곳에 오시니, 할머니가 손수 그 대순을 꺾어 점심 반찬을 장만했다. 할아버지는 맛있게 드시며 “이것은 일찍이 구산에서 맛보지 못한 것이다”라며 극구 칭찬하셨다.

이때 내 나이가 겨우 11세여서 비록 아는 것이 없었으나, 할머니가 정성껏 반찬을 조리하시던 모습과, 할아버지가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보이는 듯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어느새 세월은 육십 여 년이 지나갔고 이 몸도 벼슬살이하느라 고향을 떠난 지가 오래되었다. 고향과 멀리 떨어져 있어 조상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했고, 어리던 이 몸은 이미 장성하고 또 나이가 들었으니, 사모하고 애통한 마음이 크기만 하다. 더구나 지금 나이가 칠십이 되어서 일을 하직할 때가 되었으니, 더욱이 고향에 돌아가서 옛집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아들 학명(鶴鳴)이 일 때문에 옛날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고, 헌(軒)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청했다. 또한 헌의 이름을 붙인 뜻을 기록할 것도 함께 청하면서, 이것을 판각하여 걸어놓고 나를 위로해주고자 했다. 이에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

절순헌기에 등장하는 구산(龜山)에는 남구만이 태어났다는 집터 추정지와 탄생 설화도 함께 전해온다. 남구만의 탄생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부 기록에는 충북 충주 누암의 외가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으므로, 그의 탄생지에 관해서는 좀 더 확실한 고증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거북이마을은 남구만의 할아버지 대부터 남구만까지 기거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결성현지와 홍성군지 인물편 등에는 남구만과 선조들이 구항 거북이마을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남구만의 탄생 설화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구만 탄생 추정 집터 우물.

남구만의 탄생 설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 뒷산 이름이 ‘보개산(寶蓋山)’이다. 보개산이라는 이름은 보물이 많이 묻혀있는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의미하는 보물은 값 비싼 물건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인물을 말한다. 보개산의 정기를 받은 주변 마을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태어날 것을 암시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보개산 기슭 내현리 뒷산 봉우리 이름이 ‘감투봉’이다. 감투봉이라는 이름도 남구만의 탄생설화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감투봉에서 산불이 났었다고 한다. 산불은 바람을 타고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주변을 태우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감투봉에서 시작된 산불은 거꾸로 산 아래 거북이 마을을 향해 내려오는 것이었다. 산불의 기세가 너무도 강렬하여 사람들은 접근할 수도 없고 속수무책이었다. 자연적으로 산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산 아래 거북이 마을에는 젊은 산모가 아기를 낳으려고 심하게 진통을 하고 있었다. 이 댁은 마을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여 산불이 내려오는 길목이었다. 산불은 마을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내려오며 산모가 있는 집까지 다가왔다. 산불이 산모의 집을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응애, 응애…”. 집안에서 사내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산통을 느끼며 신음하던 산모가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참으로 신기한 일이 생겨났다. 마을과 집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산불이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스르르 꺼지는 것이었다. 산불은 사내아이가 태어난 집 바로 위쪽에서 스스로 꺼지면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마을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을 암시하는 산불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내아이가 바로 남구만이다. 산불이 발생했던 마을 뒷산 봉우리는 사내아이가 나중에 훌륭한 감투를 쓸 것이라고 믿으며 ‘감투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전주사댁 우물.

거북이마을에는 남구만 생가터 추정지 우물과 함께 오래된 우물이 또 한 곳 전해온다. 거북이 마을 맨 위쪽 오래된 기와집에 전해오는 우물이다. 이 우물을 마을에서는 ‘전주사댁 우물’이라고 불러왔다.

우물이 있는 기와집은 조선 말기에 조정의 실력자가 귀향하여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을 후대에 거북이 마을의 재력가였던 담양전씨가 매입해 살면서 ‘전주사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주사댁 우물은 항상 물이 철철 넘쳐흘렀고 주변을 둥글게 돌로 둘러쌓은 형태였다. 2002년도에 마을사업을 하면서 현재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남구만 탄생 추정 집터 우물도 주변을 돌로 잘 정비해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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