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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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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습니다”
  • 윤종혁
  • 승인 2021.04.19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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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1급 박쌤, 제주 자전거 일주 도전
후원 모아 스리랑카 장애 아동 후원 계획
강상규 수의사와 시각장애 1급인 박쌤(사진 오른쪽)이 다음달 1일부터 4일까지 제주도 234km 완주에 도전한다. 100여 명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특별 제작된 2인용 자전거. 사진제공=강상규

오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하면 ‘안 될 것이다’, ‘못 할 것이다’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편견을 깨고 시각장애1급 박쌤(가명)이 다음달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 도전한다. 혼자서는 불가능하지만 자전거를 함께 탈 동료가 있기에 하루하루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홍성읍에서 ‘강영석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강상규 수의사는 지난해 10월 홍성군장애인체육회에서 일하는 후배로부터 “시각장애인 한 분을 소개하고 싶은데 혹시 2인용 자전거 같이 타 볼래요?”라는 제안을 받았다. 강 수의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탈 정도로 자전거를 좋아한다.

강상규 수의사가 박쌤을 만나게 된 계기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박쌤은 중학교 체육 교사였다. 갑자기 10여 년 전부터 시력이 나빠졌다.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았다. 현재 90% 이상 시력을 잃었다. 의사는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사시사철 아름답게 변해가는 자연을 눈으로 감상할 수 없다. 직업도 포기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고 오랜 시간 혼자 보냈다. 시력과 함께 마음의 상처도 깊어졌다.

박쌤과 강 수의사는 주말을 활용해 장애인체육회에서 빌려 준 2인용 자전거를 같이 탔다. 자전거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강 수의사는 박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38년 전 가본 제주도를 다시 가보는 것’임을 알게 됐다. 강 수의사는 즉석에서 2인용 자전거로 제주도 234km를 달리자고 제안했다. 박쌤이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박쌤을 위해 대나무로 만든 가볍고 튼튼한 2인용 자전거 특별 제작을 추진했다. 적지 않은 돈이 드는 자전거 제작에 주위 사람들 100여 명이 선뜻 후원을 자처했다. 꿈을 위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1964년생 박쌤과 1976년생 강상규 수의사 모두 용띠이기 때문에 ‘더블드래곤’이라는 팀 이름도 정했다.

더블드래곤은 다음달 1일부터 4일까지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한 바퀴에 도전한다. 두 사람은 234km 완주 뿐 아니라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어린이날인 5월 5일까지 550만원의 후원금을 모아 전액 스리랑카 장애 아동의 교육지원에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강 수의사가 후원하는 코인트리라는 국제구호단체에서 스리랑카 장애 아동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 계기가 됐다.

강상규 수의사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제주도 한 바퀴 도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챌린지를 고민하게 됐다. 저희가 받은 ‘사랑의 빚’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스리랑카 장애 아동들에게 ‘사랑의 빛’으로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 박쌤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박쌤은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나의 도전이 다른 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해주고 싶다. 스리랑카 장애 아동을 돕기 위한 실천을 통해 장애가 있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시력을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다.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스리랑카 장애 아동 후원을 위한 기부는 네이버 ‘해피빈’에서 다음달 5일까지 진행된다. 해피빈에서 ‘코인트리’로 검색하면 박쌤의 도전을 응원할 수 있다. 

강상규 수의사와 박쌤은 자전거 일주를 통해 모은 후원금을 스리랑카 장애 아동을 돕는데 전액 사용할 계획이다. 사진제공-코인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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