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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시들지 않는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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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시들지 않는 들꽃’
  • 홍성신문
  • 승인 2021.01.1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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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들꽃과 들풀’ 유지영

홍성군에서 다양한 관광체험활동을 하는 주민들이 지난해 10월~11월 3차례 글쓰기 교육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50여 편의 에세이를 썼다. 이들은 홍성군DMO(지역관광추진조직) 사업 일환으로 조직된 ‘머물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골라 5회에 걸쳐 지면에 소개한다. 홍성군DMO는 지역 관광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조직으로, ’행복한 여행나눔’이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다. <편집자 주>

들국화 가득 핀 매봉재 길을 걷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렌다. 푸르른 하늘,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시선을 빼앗는다. 산책길 따라 풍성하게 피어있는 들국화는 꽃잎을 떨군다. 씨앗을 만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며칠 전만 해도 꽃이 만발했는데, 꽃잎은 한 가닥 시들하게 남았다. 칙칙한 색의 꽃 수술만 남은 낙엽이 있다. 이제 들국화를 만나려면 내년 이맘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다. 가을을 누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이 오려는 것 같다.

​씨앗을 한주먹 받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못내 아쉬워 꽃집에 들렀다. 꽃집에 들어가니 국화꽃이 가득하다. 자그마한 하얀 소국 한 다발과 푸른빛의 쨍한 보라색 소국을 데려왔다. 요즘 인기 많은 보라색 소국의 이름은 ‘아스타’라고 알려준다.

​매봉재 들꽃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들국화도 각각 이름이 있다. 잎이 길고 미끈하면 '벌개미취', 아래쪽 잎에 뚜렷한 톱니무늬가 있으면 ‘쑥부쟁이’, 잎모양이 쑥과 비슷하면 ‘구절초’다. 구절초, 산구절초, 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등 이름을 불러줄 걸 그랬다. 가을을 누리는 동안 당당하게 누리고 뽐내라며 이름을 불러줄 걸 그랬다.

꽃집에서 데려온 두 다발 국화를 반반 섞어 유리병 두 개에 꽃꽂이랄 것도 없이 푹 꽂았다. 거실에 하나, 식탁에 하나, 올려두고 멍하니 바라본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흔들린다. 언젠가부터 들국화와 함께 걷는 가을을 마음 깊이 담고 있었나 보다.

​작은 꽃송이 하나에 가늘고 여린 꽃잎을 달고 간신히 서 있다. 숲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작은 꽃이 흔들거리면 내 마음도 덩달아 흔들린다. 길가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던 들국화는 아니지만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여리게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은은한 국화향이 코끝에 머문다.

일상이 바빠 잊고 지내다 무심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기분 좋은 국화향이 스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무심히 2주가 흘렀다. 식탁 위의 국화꽃도 머물기를 멈추고 싶은지, 꽃병 속의 물이 뿌옇게 변하고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버린 들국화가 아쉬워 데려온, 내 마음의 작은 들꽃마저도 보내줘야 하나 보다. 푸르른 가을 하늘과 가을 숲의 맑은 바람과 가을향기를 품은 들국화를, 구절초를, 조금만 더 머물게 하고 싶다.

​작년 고창 ‘쉼드림’에 갔을 때이다. 장미꽃의 찐한 파란 색깔 때문에 시선을 빼앗겼다. 탁자 위에 놓인 여러 꽃들 중에 파란 장미를 보고 놀랐다. 조화인가? 슬쩍 만져보니 찬기를 살짝 머금은 느낌이 생화인 것 같다. “파란 장미는 뭔가요? 요즘엔 파란 장미도 있나 보네요. 물올림 한건 가요? 생화 같은데.”

“파란색 장미는 보존화한 거예요. 한 3년 정도 생생하게, 생화 촉감 그대로 시들지 않는 장미로 감상할 수 있는 꽃이라 ‘천일화’라고 불리기도 해요.” “보존화? 그게 뭔데요?” “빨리 시드는 생화를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도록 보존처리를 한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지만, 일본에서는 인기 있는 아이템이에요.” “아! 그렇군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군요.”

그 후로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촌은 낯설어서 그렇지, 도시에서는 프리저브드 꽃(화학 약품 처리를 하여 오랫동안 생화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꽃)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프러포즈용이나 어버이날처럼 특별한 날에 시들지 않는 꽃을 선물로 많이 애용한다.

가을 어느날 매봉재를 걷다가 길가에 핀 들꽃을 보고 ‘들꽃을 보존하면 안 되려나? 들꽃과 들풀, 숲을 느낄 수 있는 소나무나 도토리 같은 자연물을 보존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늘거리는 들국화 꽃잎을 보존해 내년 이맘때 들꽃이 다시 필 때까지 예쁜 모습으로 머물러 준다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풀, 냉이초, 열매 맺힌 소리쟁이까지 하나씩 보존을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이다. 꽃은 어떨까? 아직 완성된 들꽃은 없지만 언젠가는 나의 실험정신과 노력이 결실을 맺을 날이 올까? 들꽃은 다 져서 씨앗만 남겨놓고, 매봉재 길엔 낙엽만 뒹군다. 어디서 들꽃을 구하지? 꽃시장에라도 다녀와야겠다.

​다시 도전이다. 구절초, 산구절초, 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벌개미취까지 프리저브드에 성공할 그 날을 기다리며 실험한다. 우리를 유혹하는 가을꽃 들국화의 은은한 향기까지 머물게 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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