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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할머니와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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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할머니와 블랙리스트
  • 홍성신문
  • 승인 2020.11.2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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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 참교육학부모회홍성지회장

김장철이라 장 볼 일이 많아 며칠째 농협 하나로마트를 들랑거리고 있다. 그날도 젓갈과 찹쌀가루 등 빠진 김장재료 몇 가지를 사느라 급하게 마트에 갔었다. 계산대에서 결재를 마치고 배달 박스에 물건을 담고 있는데 내 다음 차례로 계산을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쌀 한 봉투와 몇 가지 식재료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계산원이 할머니를 보더니 뜻밖의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할머니 여기 오시면 안돼요. 할머니는 여기 오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면전에서 큰 소리로 면박을 주면서 계산을 거부하는 것이다. 계산원의 태도는 ‘당신은 여기서 물건을 살 자격이 없으니 나가달라’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너무 놀랐다. 당황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차마 할머니 얼굴을 쳐다 볼 수가 없어 얼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할머니가 어쩌지도 못하고 망연자실 한 사이 계산원은 다른 직원을 불러 사태를 해결하는 것 같았다. 마트 직원들끼리 수군거리는 이야기가 들렸다. 직원들이 그 할머니를 “도둑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그 할머니는 과거에 농협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적이 있었고, 그런 전력 때문에 마트에 입장이 불가하고 물건도 살 수 없는 불량고객이 된 것이다. 이날 직원들의 일사분란 한 대처를 보건대 아마도 농협마트 내규에 이런 처벌 규칙이 있어 불량 고객을 따로 분류하여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할머니의 행색으로 보아 사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농협의 이런 매정한 처사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농촌에 살면서 오랫동안 농협을 믿고 거래하고 있는 준조합원이다. 준조합원이라 해서 내가 농협에 어떤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농촌사람으로서 농협은 그나마 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점점 위축되어 가는 농업을 지켜내고 농민의 복지를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한결같다.

나는 그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심한 충격을 받은 후 내내 그날의 일이 잊혀지지 않아 이 글을 쓰게 됐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이만큼 진일보한 요즘에도 이런 후진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가 농협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상습적인 도벽을 한 전과가 있더라도 그 이유로 한 사람을 낙인찍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고 배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주어진 적이 없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고 반인권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농협은 그날 내가 목격한 상황에 대해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즉각 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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