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가을날 알밤을 나뭇잎 속에 숨겨 두고
죽은 고목나무 밑에도 묻어두고
이끼 낀 자리 밑에도 폭신 깔아 주고
겨우내 먹을 것처럼 보관하지만
모든 걸 기억 못한 다람쥐
한 알은 떡갈나무로 자라 그늘을 만들어 내고
한 알은 배고픈 아기 청솔모의 배를 채우고
한 알은 굶주린 새가 먹고 겨울을 나고
겨울 산 겨울 양식 걱정 없네
미리 보관 못한 난 탈탈 털어 낸
마음의 양식이라 읽는 책
감성에 젖어 읽는 시집
아침마다 읽는 신문 한 줄
한자어, 고사성어 한 줄
노랫말에 흥얼대는 흥 한 줄
알밤을 묻어두고 다 기억 못하는
다람쥐는 겨울 숲 생태에 일조하지만
허둥대지 않는 다람쥐의 삶의 방식과 지혜에
난 빤히 빈속을 겨울 산처럼 드러내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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