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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학교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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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학교 그리고 나
  • 홍성신문
  • 승인 2020.11.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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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중 문성일 교사

코로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생각해 보면 학생으로서의 16년과 교사로서의 29년이라는 45년의 긴 학교생활 속에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의 사건은 내 개인에 관련된 관계에서의 문제였고, 학교 내에서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번 사건은 다르다. 기억컨대 개학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로 인해 학교에 학생이 없다.

학교는 학생이 주인이며 학생이 없는 학교는 아이 없는 엄마와 같다. 사실 엄마는 아이가 있어야 엄마가 되는 것이기에 자식이 우선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생이 없는 교사는 없다. 또한 학생 없는 학교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데 학교에 학생이 없다.

코로나는 이제 학교 현장을 떠나서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사회전반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만들고 있다. 그 트라우마의 언저리에 사람은 이제 병원체가 되었다. 다시 말해 균덩어리가 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로의 거리 두기는 사람을 삶의 동반자가 아닌 병원체의 숙주로 인식하고 가족도 그 가까움에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신(神)과의 거리두기는 이미 시작한지 오래다.

더불어 함께라는 도덕적 언명은 당분간 폐기해야할 덕목이 되었다. 사실 우리에게 도덕적 트라우마는 IMF이다. 우리의 공포 안에 IMF는 삶을 자본화하는 가장 강력한 폭발이었다. 모든 것을 통합하는 자본의 그 무서운 덕성의 통일성은 이제 코로나를 통해 자본의 거대 논리가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제 도덕이나 인간적 삶보다 인간을 경쟁의 대상로 보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 병원체의 숙주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신(神)도 사람도 이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끼리의 믿음이 사라진 우리는 이제 서로를 불신을 넘어 위험한 존재로 파악한다. 길거리에 만난 사람의 호의도 이제 두렵다. 그가 혹시 보균자인지 누가 알겠는가? 이런 삶 속에 나는 어찌 살아야 할 것인지 못내 불안하다. 내 삶에 이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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