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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설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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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설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김영찬 기자
  • 승인 2020.11.2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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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오두리폐기물처리장반대대책위원회 전기룡 간사

갈산면 오두리에 산업폐기물처리장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홍성의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조율한 것이 홍성오두리폐기물처리장반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전기룡 간사(50)이다.

그는 폐기장 반대활동에 앞장 섰지만 얼굴이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주민들을 이끌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사실 전기룡 간사는 이런 일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대학시절부터 사회운동가로 청춘을 질풍노도처럼 보냈다. 그러다 지난 2003년 고향인 갈산면 오두리로 돌아왔다. 고향에 와서는 조용히 농사나 지을 생각이었지만 세상이 그를 쉽게 놓아주진 않았다. 2004년 쌀개방 바람이 불었다. 당시 홍성의 과반수의 농가는 쌀에 대부분의 소득을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농민회 활동에 참여했다. 천만농민투쟁 등 현장에 함께 했다. 투쟁결과 개방은 됐지만 쿼터제나 관세적용 등 얻은 것은 많았다.

“많은 농가들이 걱정이 많았고 나도 위기의식이 높았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활동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조용하게 지내나 했지만 이번에는 오두리에 대규모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온다는 말이 돌면서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이번에도 나서고 싶진 않았지만 주변에는 대부분 나이 많은 사람들 뿐이라 달리 나설 사람이 없었다. 물론 대책위 간사를 맡는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법적인 부분은 잘 모른다. 사업체 쪽과 법이나 행정적인 다툼을 해야 하는데 잘 할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우려한대로 활동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동네에 유언비어가 돌면서 분위기도 흉흉해졌다. 초기 대책위 활동을 시작할 당시 찬성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반대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처음에는 찬성하는 쪽에서 죽인다 어쩐다 소리까지 나왔다. 당시는 열이 받아서 할테면 해보라는 심정이었다”

금강유역환경청장이 지난 5월 갈산 오두리를 방문했다. 전기룡 간사가 마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책위 활동으로 생업에 지장도 있었다. 전 간사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다 크게 다쳤다. 덕분에 며칠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퇴원하자마자 몸도 추스르기 전에 일을 나섰다. “원래 집에서 농사를 크게 짓진 않는다. 봄에는 이양기로 모내기를 대신해 주고 가을에는 트랙터로 수확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일종의 대리기사같은거다” 원래는 못자리 만들어주는 사업도 했었는데 대책위 활동 때문에 사업은 접었다.

생계 문제도 문제였지만 마을 주민들과 충돌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떠나서 사람들하고 계속 부딪히면 감정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 고생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이런 감정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전 간사는 그간 활동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오두리 주민들은 물론 YMCA, 예산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직 끝난게 아니지만 그동안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이제 앞으로 계획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앞으로 바라는 것은 고향 마을이 잡음 없이 잘사는 것뿐이라고 소박한 소망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걸 돌아보면 나도 이제 50이고 내 앞가림부터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앞으로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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