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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배운 귀한 인생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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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배운 귀한 인생 수업
  • 윤종혁
  • 승인 2020.11.0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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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경 충남미디어포럼 의장

농촌에서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지난 봄, 뜻이 맞는 몇 사람과 작목반을 꾸려 2000여 평 토지에 ‘까마중’을 심었다. 까마중은 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나는 터주식물(마을이나 농지에 주로 분포된 식물)로 먹을 것이 없었던 예전에 아이들의 좋은 주전부리였지만 이제는 개량종이 나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과감하게 선택한 작물이다.

처음 작물을 심을 때와 줄을 맬 때, 그리고 수확할 때를 제외하면 비교적 손이 덜 가고, 생과로 팔기보다 효소나 생즙으로 가공 판매한다면 수익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농사를 지어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밭농사는 무엇보다 여성농업인들의 고된 노동이 수반돼야 함을 깨달은 첫 농사였다.

최근 며칠간 밭일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여성농업인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다. 평생 밭일을 하면서 허리가 꼬부라진 70대 이상 어르신도 계셨고, 워낙 일거리가 없어 막 밭일을 시작한 40대 여성도 있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여성농업인들의 처우나 지위가 참으로 열악함을 느꼈다. 홍성군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할 때 여성농업인센터와 소통도 하고 여성용 농기계 임대 사업에 대한 대안도 내놓고, 귀농귀촌하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안정적인 숙소도 마련했지만 근본적인 정책으로까지는 접근조차 못했었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상반기에 발표한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충남여성농업인 일⋅생활 균형 제고 방안’ 자료에 따르면 충남에서 여성농가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청양군으로 40.3%를 차지한다. 부여군 30.2%, 예산군 29.9% 순이다. 홍성군은 17.8%로 10위에 속한다. 홍성군과 예산군이 비슷한 인구 분포와 산업 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성농가인구 비율만 따진다면 홍성군이 예산군에 비해 도시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통계이다.

이번에 까마중을 수확하면서 여성농업인들의 단순 노동을 효율적인 비용으로 경쟁력있게 바꿀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2, 제3의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로당이든 마을이든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이 불가능해진다면 점차로 여러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한 농작물 생산은 어려울 것 같다. 또 밭농사는 언제쯤 과학과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화가 가능하게 될지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에 답답했다.

여성농업인들의 일상 속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책들이 많이 나와줘야 할 것이다. 장차 ‘일’과 ‘생활’의 영역을 ‘농업노동의 감소’ 및 ‘돌봄의 사회화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결국에는 여성농업인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공과 유통까지 다 관여하며 전통적인 농업과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가야만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농업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돌아보니 어설픈 초보 농사꾼의 좌충우돌 농사짓기는 수익보다는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참으로 많음을 경험한 귀한 인생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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