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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사랑한 일소 잃고 후계소 교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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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사랑한 일소 잃고 후계소 교육 중
  • 이번영 기자
  • 승인 2020.10.2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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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 모전마을 함동식 이장의‘이색 삶’

홍동면 홍원리 모전마을 함동식(69) 이장은 요즘 무거운 끄싱게를 한우 암송아지 멍에에 매달아 끌고 가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이 훈련이 끝나고 냉이 밭을 갈려면 내년 3월까지 6개월 쯤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논과 밭을 갈며 일 잘하던 함동식 이장네 일소가 세상을 떠난 건 지난해 9월. 홍성군청 일제검사에 폐렴 유사 판정을 받으면서였다.

“잘 먹고 일 잘하고 멀쩡한 소가 글쎄 폐렴 증상이 나타난다는게유. 전염 막으려면 없애야한다는 거 아니것남유. 난 절대 안 된다. 15년 동안 같이 일하며 사랑하는 식구다. 못 내놓겠다. 싸우며 막았쥬. 군청 직원이 계속 찾아와 법이 그렇다고 안락사 시켜야 된다는거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구유. 몇 차례 줄다리기 하다가 630kg 나가는 놈인데 630만원 받고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내 줄 수 밖에 없었슈. 저 안 보는데서 처리하라고 울며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함 이장은 후계자를 장만했다. 올해 7월 생후 9개월 된 한우 암송아지 20마리를 사들였다. 그중에서 일소 한 마리를 골랐다. “일 잘 할 소를 고르는 게 며느리 고르는 것 보다 힘들어유. 눈매, 발톱, 등판, 커서 발길질 안할 성질도 봐야구, 말귀 알아들을 만큼 머리도 좋아야 돼유”

끄싱게 훈련은 집 앞 시멘트 도로에서 실시한다. 함 이장이 삼발이 소나무를 구해다 만든 끄싱게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소 코뚜레를 잡고 끌고 간다. 훈련 내용은 ‘이랴아’ 하면 전진하고 ‘와아’ 하면 스톱, ‘쩟쩟쩟쩌’ 하면 좌회전, 고삐를 살짝 당기면 우회전하는 식으로 말귀 알아듣기를 가르친다. 6개월이면 말을 잘 듣는다고 한다. 제구실 못 하는 사람보고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속담을 이해할 수 있단다.

생후 12개월 된 이 소 체중은 약 250kg. 400kg 정도로 크면 말 안 들어먹어 훈련이 불가능하단다. 함 이장은 사람도 스무살 전에 일을 가르쳐야지 나이 먹으면 어렵다는 이치가 같다는 것이다.

홍동면 홍원리 모전마을에서 태어난 함동식 이장은 홍동초등학교를 41회로 졸업하고 열다섯살부터 농사일을 시작해 다른데 가본 적 없이 평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함 이장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들려준 말 중 지금까지 귓가에 쟁쟁히 남아있는 말이 있다. “막내야, 너는 나중에 논 1만평, 밭 1만평, 산 1만평을 사서 농사지어라”는 당부였다.

그는 열심히 일하며 근면하게 살아서 어느덧 부모님 당부를 실현했다. 삽과 낫, 지게로 지탱하며 70 평생을 일했다. 그는 어른들이 전해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는 말을 새기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집 앞 버드나무 정자에 앉아 있다가 논에서 일하고 나오는 트랙터에서 흘러내리는 기름 덩어리가 농지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환경을 살리는 농사일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 기계가 아닌 소를 이용해 논과 밭을 갈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이 생각됐다.

열다섯 살 때부터 배운 쟁기질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산을 제외하고도 2만평에 가까운 논밭을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고 3500평 정도만 소에게 의뢰했다. 냉이 밭은 항상 소가 갈아엎는데 1500평을 1시간 30분이면 된다. 소가 일하면서 배설하는 분뇨는 거름이 돼 이중으로 좋다.

함 이장은 요즘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고 자랑했다. 내년 3월 둘째 아들이 늦장가를 가게 됐는데 결혼 후 당진지역 운수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 와서 친환경농업으로 농사 짓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함 이장이 전부터 권유했던 일이다. 예산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예비 며느리도 흔쾌히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정년퇴직하면 남편과 함께 홍동에서 친환경농업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함 이장 둘째 아들 역시 어려서 아버지한테 배워 쟁기질을 잘 한다고 한다. 오서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전마을 친환경 논·밭에서 “이랴아 ~ 와아~ 쩟쩟쩟쩌” 함 씨 농부의 소 모는 소리와 소 방울 메아리를 오래 오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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