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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장사익’ 마케팅 필요 ② 홍성이 낳은 위대한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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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장사익’ 마케팅 필요 ② 홍성이 낳은 위대한 음악인
  • 홍성신문
  • 승인 2020.10.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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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물이 지역을 변화시킨다
③ 홍성군 인물 마케팅 추진 계획

소리꾼 장사익은 우리시대 최고의 가객(歌客)이라 평가받는다. 국악을 바탕으로 무르익은 그의 노래는 독특한 창법을 이루면서 소리꾼 ‘장사익 창법’을 만들어냈다. 노래는 팔자고 운명이라 말하는 장사익. 언제 어디서건 고향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는 수더분한 충청도 사투리에 배어있는 겸손이 더욱 빛나는 사람.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이 고향인 장사익은 마흔 다섯 나이에 평생 해보고 싶었던 노래를 시작했다. 홍성문화원 조남민 사무국장은 홍성을 전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장사익 마케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래 글은 홍성문화원 조남민 사무국장이 2013년에 홍성신문에 쓴 글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아는 사람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 홍성이 낳은 위대한 음악인이 있다. 바로 장사익이다. 그의 노래에 매료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그를 국보급 가수라 칭한다. 공연 때마다 단정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서는 그는 딱히 가수도 아니고 가수가 아닌 것도 아니다. 가요와 국악을 넘나들며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그에게 ‘장아찌 같고 성난 파도 같은 소리꾼’이라는 칭호는 어쩌면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가 가수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국악공연 뒤의 뒤풀이 자리에서 혼을 다해 노래를 부르던 그를 눈여겨 본, 몇몇 음악가들의 집요한 권유에 의해서였다. 46살의 나이에 첫 데뷔무대에 선 그는 새로운 인생이 눈앞에 펼쳐짐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시유. 드디어 갈 길을 찾은 거잖아유. 고등핵교 졸업허구 뺑뺑 돌아 여기까지 온 거지. 그러고 보니 지가 몸은 딴 짓을 해도, 늘 노래 속에 살았던 것 같드라구유.” 소탈한 장사익은 그렇게 첫 공연을 회고했다.

<찔레꽃> <귀가> <하늘가는 길> <님은 먼곳에> <봄비>등을 담은 1집을 발표하자, 세상은 조용하게 그러나 거대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노래마다 느껴지는 혼신의 열정, 장르와 박자를 넘나드는 곡예, 영혼을 통째로 울리는 듯한 묘한 떨림, 이것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감동임에 틀림없었다. 모든 공연장은 매진 사례를 이루었고, 통곡하듯 노래 부르는 <찔레꽃>에 많은 관객은 마음의 빗장을 풀며 눈시울을 적셨다.

장사익의 노래는 뚜렷한 박자 없이 호흡으로 부르는 노래다. 그는 노래를 만들 때 악보를 적지 않는다. 그냥 속에서 나오는 대로 흥얼거릴 뿐이다. 그의 곡 <국밥 집에서>를 보면, 앞머리는 대금산조풍인데, 중간은 희망가가 흘러나오고 뒷 소절로 가면 진도아리랑 가락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는 가슴이 짠하고 슬픈 것 같지만 노래를 다 듣고 난 후면 어떤 위안을 받은 것처럼 속이 다 후련해진다.

경남 산청군에서는 뚝방길을 조성해 찔레꽃을 심고 <장사익 찔레꽃 뚝방길> 비석을 세우며 <찔레꽃 음악회>를 해마다 개최하는 등 ‘우리의 장사익’을 뺏어가는 노력을 몇 년째 이어 오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을까. 문화가 돈이 되고 관광이 경제가 되는 시대다. 늦었지만 우리 홍성에서도 <장사익 찔레꽃 마을>을 만들고 <장사익 음악회>를 열어야 한다. 장사익의 음악이 좋아서, 그 격정의 소리에 감동되어 그를 따라다니는 1만5000명이 넘는 ‘소리꾼 장사익을 사랑하는 사람들’카페 팬들을 우리 홍성으로 끌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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