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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 석택리 유적의 진정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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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 석택리 유적의 진정한 부활
  • 김영찬 기자
  • 승인 2020.09.27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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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택리 유적은 처음 발견된 이후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땅 속에 묻혀있다. 발굴 당시 동아시아최대의 환호취락이라고 떠들썩 했던 것이 무색하게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지금까지 기획취재를 통해 다른 지자체의 국가사적지 추진 사례를 살펴봤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모두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석택리 유적의 경우도 갈 길이 아주 멀다. 지난 2012년 첫 발굴 조사 후 변변한 학술대회 한 번 열지 않은 상태다. 충남도는 10월부터 석택리 유적에 대한 현지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 도 지정문화재를 거쳐 국가사적지 지정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밝는다고 한다.

국가사적지 지정에 성공한 창녕군 계성리 고분군의 경우 도 지정 문화재가 되고 20년 만에야 국가사적지로 지정됐다. 지난 2008년 사적지 추진을 시작한 후 사적지 지정까지 햇수로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함양군이나 울산시 등 다른 지자체들의 사례를 보면 오랜 기간 일관된 계획을 가지고 사적지 추진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사적지의 추진은 행정의 일관적인 추진 의지와 주민들의 호응, 학계의 연구 삼박자가 어울어져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석택리 유적의 국가사적지 지정에 대한 각계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우리는 홍주천년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홍성읍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홍주 이전 온주시절에는 결성이 홍성의 중심이었다. 석택리 유적에 사람이 살았던 당시에는 홍북이 홍성 역사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석택리 유적은 2012년 세상의 빛을 한번 본 후 다시 흙 속에 묻혔다. 석택리 유적이 다시 흙 속에서 나올 때는 단순히 유적을 복원하고 국가사적지를 추진하는 게 아닌 지역의 2000년의 역사를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석택리 유적의 부활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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