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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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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24
  • 홍성신문
  • 승인 2020.09.27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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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집안 어려움 예언한 청실배나무

우리주변 곳곳에는 수령이 오래돼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이 많다. 이들 보호수들 중에는 역사적인 가치와 함께 재미있는 전설을 간직한 나무들도 있다.

나무에서 우는 소리를 내어 외적의 침입을 미리 알려줬다는 나무, 일 년 농사의 풍흉을 미리 예언해 줬다는 나무, 일본 순사를 혼내 줬다는 나무 등 다양한 얘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청룡산 서쪽 기슭에는 임득의 장군 사당인 정충사가 있다. 임득의 장군은 임진왜란 중인 1596년(선조29)에 홍주읍성에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청난공신 3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정충사 옆으로는 수령이 대략 3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청실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정충사를 건립할 무렵에 숭모전 사랑채 옆에 심은 것으로 전해오며 지금도 싱싱한 모습이다. 청실배나무는 신기하게도 집안이나 나라에 변란이 닥치면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나무의 수세가 약해지고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1940년대 초에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때였다. 이때 정충사를 지키던 임승조 선생은 중국으로 망명해 있었고, 그의 장손인 임호영은 서울에서 공부하며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있었다. 임승조 선생은 임득의 장군의 12대 종손이다.

이때 청실배나무에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나무의 수세가 약해지며 화려한 꽃도 피우지 않고 잎과 가지가 말라갔다. 표피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수액은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지금 나무에 생긴 흠집은 옛날 표피로 흘러내리던 수액 자국이라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조국이 광복되고 주인이 돌아온 이후에야 생기를 되찾았다. 다시 힘을 얻어 옛날처럼 생기 넘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임승조 선생은 해방 후 중국 망명에서 돌아와 청실 배나무 한 그루를 또 심었다. 크기와 나이가 비슷한 청실배나무를 임득의 장군 묘역 앞에 심었다.

두 나무는 서로 50m 간격으로 마주보고 서있었는데 참으로 사이좋게 잘 자랐다. 우애가 돈독한 형제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에 뜻을 같이했던 많은 애국지사들은 정충사 숭모재를 자주 방문했다. 이곳 사랑채에서 여러날 함께 묵으며 중요한 협의를 하곤 했다. 또한 임승조 선생과 함께 배나무 옆 사랑채에서 “청산리 벽계수야”, “이화에 월백하고”등의 시조를 읊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나던 해에 청실배나무가 또다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두 그루 중에서 나중에 심은 한 그루는 깨어나지 못하고 1953년에 고사하고 말았다. 이즈음에 조국의 독립운동과 문중에서 큰일을 하던 임한주 선생이 타계했다.

혼자 남게 된 청실배나무는 이후로도 가끔씩 수세가 약해지고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개 가족 또는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혼자 남은 청실배나무는 현재 싱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0년 숭모재가 화재로 전소될 때 화상을 입어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위기를 견뎌내고 매년 화려한 꽃과 열매를 맺는다.

청실배나무의 완숙된 열매는 어른의 주먹만 한 크기다. 서리가 오기 전에는 씹기가 어려울 정도로 과육이 단단하며 맛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서리가 내리고 늦가을에 완숙된 배는 맛이 좋고 특이하다. 개량종 배 맛과는 또 다른 싱그러운 향이 물씬 풍기며 당도가 높다.

청실배는 한약재로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임승조 선생은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에 한의사 역할을 했다. 인근에서 꽤 용한 한의로 소문 날 정도로 명의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임승조 선생은 중국 망명에서 돌아와 생을 마칠 때까지 청실배를 한약재로 유용하게 활용했다. 청실배는 해소천식의 약재로 사용되어 환자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청실배나무는 주인 임승조 선생을 주변의 명의로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정충사 청실배나무는 여전히 싱싱한 모습이다.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때는 주변이 환할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은 약재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튼실하기만 하다.

한편 정충사 주변으로는 느티나무 세 그루와 배롱나무 한 그루가 함께 자란다. 두 나무 모두 수령이 300년에서 4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정충사를 조성한 후에 심은 나무라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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