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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개운포 성지, 시민이 앞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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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개운포 성지, 시민이 앞장서다
  • 김영찬 기자
  • 승인 2020.09.21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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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 석택리 유적 부활을 꿈꾸다④
개운포 성지 성벽의 모습.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띄고 있다.

홍북읍 석택리에서 환호취락지가 발견된 것이 10년이 지났다. 발굴 당시 국내 최대 크기 원삼국시대 환호취락이라는 평가와 함께 국가사적지 지정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없이 흙속에서 잠자고 있다. 다른 많은 지자체는 작은 문화유산이라도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가사적지 추진도 한 방법이다. 이에 국가사적지를 추진하고 있거나 지정에 성공한 지자체들을 둘러보고 석택리 유적의 국가사적지 지정과 이에 필요한 노력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본다.

① 석택리 유적의 긴 겨울잠
② 창녕군 계성리 고분, 국가사적지 되다
③ 함양군 화과원 재조명, 불교계의 노력
⑤ 석택리 유적 부활을 위한 제언

공업단지에 갇힌 옛 성터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81번지 일대에 위치한 개운포 성지는 조선시대의 성터이다. 개운포 성은 둘레 약 1264m이며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성곽으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개운포 성터는 신라시대부터 외적을 막는 군사요충지였다. 1459년 부산포에 있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 1592년까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있었다. 수영이 옮겨간 후 전쟁용 선박을 만드는 전선창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성안의 마을은 선수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전선창은 1895년 수군이 해산하면서 폐지될때지 존재했었다.

국가사적지의 경우 보통 지자체가 나서지만 개운포 성지의 경우 다른 곳과 달리 시민추진단이 사적지 추진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이들이 개운포의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해 뛰는 이유는 단순히 개운포 성지의 역사적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개운포 성지 주변은 대규모 공업단지로 거대한 제철소와 화학공장들이 즐비한 곳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개운포 성터 주변으로는 마을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공해가 극심해지면서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다. 1990년대 초 사람들은 마을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마을들이 이주하면서 이전까지 알 수 없던 개운포 성의 모습이 드러나게 됐다.

개운포 성터를 알리는 비석.

실향민들, 고향을 위해 나서다

개운포 추진위원회 이경애 사무국장도 개운포 성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마을은 이제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그녀가 학창시절 다녔던 고등학교도 폐교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몇 년 후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개운포 근처에서 코흘리개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어요. 그 당시는 여자들은 많이 배웠다는 애들도 여상까지만 다니고 취직했죠. 마을이 있던 장소에 못 가는 건 아니지만 저희도 실향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경애 씨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비롯해 시민단원들 대부분은 이곳 출신이다. 개운포 성지에 대해 국가사적지 추진을 앞장서는 것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반영된 결과다. 개운포성지가 국가사적지로 지정된다고 해도 시민들이 얻는 것은 없다. 다만 잃어버린 고향이 국가사적지로 지정되면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게 시민단원들의 마음이다. 시민단이 앞장서는 이유 또 있다. 국가사적지 지정을 시민이 원한다는 것이 추진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5년 전 울산시 남구문화원의 산하조직으로 개운포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활동에 나서게 됐다. 현재 40여 명 정도가 여기에 속해 활동하고 있다.

 

시민의 힘만으로 역부족

개운포 추진위원회원들은 지난 2017년부터 울산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롯데호텔 거리 등 울산 번화가에서 개운포성지 지정을 위한 시민캠페인을 벌였다. 추진단들은 무엇보다 울산시민들의 개운포 성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없는 예산을 쪼개서 학술대회도 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노력만으로 국가사적지 추진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추진단만으로는 전문성도 부족하고 들어가는 예산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들이 시에서 지원받은 비용은 식비 정도로 유류비 등 대부분의 비용은 자비로 부담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지원이 종료된 2019년부터는 시민추진단도 제대로 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시는 시민단 활동이 약해진 지난해야 비로소 사적지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8년 시민추진단의 개운포 성지 국가사적 추진 캠페인 모습. 사진 제공=이경애

물론 이들이 개운포 성지를 사적지로 추진하는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주민들이 공해로 인해 90년대초 마을을 버리고 떠난 곳이다. 인근에는 쓰레기 소각장과 화학공단이 둘러싸고 있어 사람들 불러들이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경애 씨는 개운포 성지의 사적지 추진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개운포 성지는 인근에 처용의 전설이 깃든 장소도 있고 과거 염전이 있던 마을이나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곳입니다. 땅 속에 그냥 묻어두는 것은 아까운 일이에요”

울산시 번화가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울산시도 개운포 성지에 대해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울산발전연구원에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기초자료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경애 씨는 울산시와 추진단과의 박자가 안 맞음을 아쉬워했다. “사실 우리가 열심히 활동할 때는 시에서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우리가 활동이 어려워지니까 이제야 추진하겠다고 저희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어떻게 활동할 지 고민 중입니다”

울산시 관계자는 “개운포성지 추진위원회 분 들이 활동하시는 것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민들과 함께 개운포 성지의 사적지 추진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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