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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화과원 재조명, 불교계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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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화과원 재조명, 불교계의 노력
  • 김영찬 기자
  • 승인 2020.09.1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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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 석택리 유적 부활을 꿈꾸다③
지난 4월 화과원 터 시굴조사 모습. 사진제공=함양군

홍북읍 석택리에서 환호취락지가 발견된 것이 10년이 지났다. 발굴 당시 국내 최대 크기 원삼국시대 환호취락이라는 평가와 함께 국가사적지 지정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없이 흙속에서 잠자고 있다. 다른 많은 지자체는 작은 문화유산이라도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가사적지 추진도 한 방법이다. 이에 국가사적지를 추진하고 있거나 지정에 성공한 지자체들을 둘러보고 석택리 유적의 국가사적지 지정과 이에 필요한 노력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본다.

① 석택리 유적의 긴 겨울잠
② 창녕군 계성리 고분, 국가사적지 되다
④ 울산시 개운포 성지, 시민이 앞장서다
⑤ 석택리 유적 부활을 위한 제언

독립의 과실 키우다

화과원(華果院)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산 50번지 일대에 위치했던 농장의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과거 수 만주의 사과나무, 감나무, 배나무 등이 심어진 과수원이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백용선 선사는 이곳에서 지난 1927년 화과원을 창건했다. 화과원은 선사의 평소 지론인 선농불교의 실천과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과일을 수확하고 도자기를 구워 판 돈으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외부에서 모집한 독립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화과원은 백운산 8부능선 부근에 위치했기 때문에 옛 화과원 터는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산이 험한데다 이곳으로 가는 길도 나있지 않다. 설립 당시 16개 동에 달하던 건물들은 6.25 전쟁 당시 전부 소실됐다. 1940년 백운산의 임야와 황무지 44만7659평을 개간해 만든 과수원 터에도 현재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리잡고 있어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시굴조사 당시 발견된 도자기 생산터 흔적. 사진제공=함양군.

화과원 재생, 불교계 움직이다

화과원의 역사적 배경 덕분에 화과원 재조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불교계이다. 화과원의 가치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대각사상연구원은 2017년부터 학술세미나를 통해 종합적 고찰을 시도했다. 이때 나온 학술적 성과는 ‘대각사상’ 28집에 수록되었다. 이밖에 불교계열인 동국대에서도 화과원에 대한 학술연구를 주도했다. 동국대학교에서는 지난 2017년에 화과원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구술 증언을 모아 데이터로 남기기도 했다.

누구보다 화과원 재조명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사람은 화과원 원장이던 혜원스님이다. 혜원스님은 지난 1970년대부터 화과원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혜원스님의 노력 덕분에 2000년 8월 31일 경상남도는 화과원을 기념물 제 229호로 지정하고 부처를 모신 봉류대 등 화과원의 일부를 복원하기도 했다.

화과원 국가사적지 추진을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도 이어졌다. 지난 2015년 주민들로 이루어진 ‘화과원 국가사적 지정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열고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한 대정부 건의 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지역신문도 지원사격을 했다. 함양지역 신문인 주간 함양 박민국 기자는 화과원의 역사적 의의과 가치에 대한 5편에 걸친 특집기사를 통해 화과원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복원된 봉류대 전경.

사적지정 역사적 의의만으론 불가능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화과원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한 움직임은 정체된 상황이다. 사적지 추진에 의욕적이던 전임 군수가 퇴임하면서 우선 순위가 밀려난 상태다. 여기에 오랫동안 화과원 발굴에 앞장 서 온 해원스님이 얼마 전 입적한 것도 추진에 큰 타격이다. 함양주간 박민국 기자는 “혜원스님이 입적하시고 행정 수장이 바뀌면서 일관성 있는 추진이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학술세미나 개최 등 국가사적지 추진을 위한 노력이 들어갔는데 동력을 상실할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화과원 유허지의 유물의 부족이다. 화과원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자료 어느 정도 축적했다. 하지만 창녕군 김주란 학예사가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 사적지 지정에는 역사적 가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화과원이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국내 유일의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농장이라는 가치는 무시할 수는 없으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유물이 함께 있어야 한다.

함양군은 지난 2005년부터 화과원 터에 해 국가사적지 사적승격을 위한 시굴 및 발굴조사, 학술세미나, 국가사적 지정 신청 용역 등을 진행했으나 지난해 12월 경남 문화재위원회로 부터  추가 정밀지표조사 등의 자료보완을 요구받은 상태다. 현재로는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함양군 박중경 문화관광 팀장은 “올해 안으로 예산이 편성된다면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밝혔으나 발굴조사에 들어가는 예산편성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어 국가사적지 추진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봉류대 공사 초기 모습. 사진제공=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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