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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을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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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을 디자인하라
  • 정만철 농촌과자치연구소장
  • 승인 2020.09.06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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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논에서 헤엄치며 놀던 개구리가 논둑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고, 허기를 달래려 긴 혀를 뻗어 작은 벌레를 낚아챈다. 물가에 사는 무자치(일명 물뱀)도 풀숲 사이에 숨어 개구리가 논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풀끝에 앉은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어둠을 밝힌다. 이렇게 논둑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과 벌레들이 뒤엉켜 산다. 논둑은 그런 살아있는 생태계였다.

한때 논둑은 부족한 밭을 대신해 식량을 생산하는 좋은 텃밭이기도 했다. 부지런한 농부는 작대기로 콕콕 찔러 논둑에 구멍을 내고 1년 동안 먹을 메주콩이나 쥐눈이콩을 심었다. 논둑에서 벤 풀을 한 지게 지고 돌아오면 논 갈고 밭 갈던 암소 한두 마리는 거뜬히 먹일 수 있었다. 논둑은 그런 식량창고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살아있는 논둑은 사라지고, 그저 논과 논의 경계로서의 논둑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제초제의 사용이다. 농민들이 고령화하면서 제초제가 농부의 손을 대신해 논둑의 풀을 없애주고 있다. 문제는 제초제가 풀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논둑의 생태계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풀이 없어지자 생물들도 같이 없어졌다. 시커먼 맨흙이 드러난 논둑은 긴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농부는 논둑에 비닐을 덮고, 심지어 콘크리트로 논둑을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논둑은 죽어가고 있다.

홍성읍 옥암리 소새울마을은 구불구불한 논길의 다랭이논이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2015년 가을, 처음으로 그 마을의 풍경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벼가 막 익으려고 누런 빛으로 물들어가는 논의 모습은 정말 황홀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눈에 띈 것이 군데군데 제초제를 쳐서 시커멓게 죽어있는 논둑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살아있는 논둑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논둑에 꽃을 심는 것이었다. 농사일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고, 논둑에서 잘 자라며, 한번 심으면 오래갈 수 있는 꽃이 없을까. 그렇게 찾은 것이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석산이라 불리며 독성이 있어 두더지나 땅강아지처럼 땅에 구멍을 내는 동물들이 기피하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2016년 5월에 처음으로 꽃무릇을 심어 이제 4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작년에도 꽤 많은 꽃대가 올라와 논둑을 붉게 물들였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많았다. 많은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꽃이 필 것이고, 찾는 이도 많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어서 논둑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내년에 농식품부의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사업을 신청할 예정이다. 사업에 선정이 되면,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꽃무릇 논둑을 가꾸는 일만으로도 가구당 최대 150만원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농촌의 경관을 가꾸는 일이 농가의 소득으로 이어진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이러스보다 사람들의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해 보인다. 소새울마을에 꽃무릇이 피면 논길을 걸으며 지쳐있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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