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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농요와 명창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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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농요와 명창의 후예들
  • 홍성신문
  • 승인 2020.08.2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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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홍성군 결성에 전해오는 ‘결성농요(結城農謠)’는, 199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 결성농요는 결성지역이 향토색이 뚜렷하고 신명 넘치는 소리와 율동에서 어깨춤이 절로 난다는 호평을 받았다.

결성농요는 농사짓는 과정 전체를 모두 보여주는 아홉 개 마당으로 펼쳐진다. 모심는 소리 ‘어럴럴상사리’, 논매는 소리 ‘얼카덩어리’와 두레소리 등은 결성지역에서 자생한 훌륭한 농요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결성농요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해마다 수차례씩 국·내외 공연을 다니며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결성농요는 오랜 세월 결성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많은 일화들도 함께 전해오고 있다. 옛날 한여름에 결성 성남리 고르내 들판에서 일꾼들이 모를 심고 있었다. 일꾼들은 쉴 참으로 내 온 간식과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고 분위기가 좋았다. 못줄을 따라 모를 심고 허리를 펼 때마다 일꾼들의 구성진 목소리가 청아하게 들판 주변에 울려 퍼졌다. 목청 좋은 소리꾼 한 명이 앞에서 선창을 하면 뒤따라서 일꾼들이 합창으로 후렴구를 구성지게 불러대고 있었다.

고르내 들판에서 부르는 농요소리는 성 너머 결성동헌까지 은은하게 들려왔다. 마침 동헌마루에 나와 있던 결성현감은 농요소리에 반해 귀를 쫑긋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결성현감은 농요를 부르는 주인공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이보게, 지금 저 들판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가?”

결성현감은 옆에 서있는 아전에게 물었다.

“예, 성 너머 고르내 들판에서 일꾼들이 모를 심으며 부르는 농요입니다.”

“허, 그 노래 소리가 참으로 구성지고 가슴을 파고드는구나. 저 소리를 동헌마당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겠는가?”

“예,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전은 결성현감의 부탁을 받고 고르내 들판으로 달려갔다. 일꾼들에게 현감의 얘기를 전하고 승낙을 받아왔다.

그날 일꾼들은 일찍 일을 끝내고 동헌마당으로 몰려왔다. 결성현감 앞에서 농요를 구성지게 부르며 한바탕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결성현감은 일꾼들의 농요에 감탄하며 술과 음식을 정성껏 대접하여 보냈다.

결성농요를 말할 때, 우리나라 판소리의 효시로 알려진 최선달(1726~1805) 명창을 빼놓을 수 없다. 최선달이 고향 결성 성남리에서 부르던 농요는 듣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성에 시찰 차 내려온 중앙 관리가 최선달의 목청에 반해 한양으로 안내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최선달이 태어날 때 꿈 얘기도 전해온다. 최선달 어머니가 출산 전날 꿈속에서 커다란 누에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속에서 누에 한 마리가 입으로 실을 내뿜는 것이었다. 누에 등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데, 그곳에서 구름이 피어오르더니 실과 구름이 어우러지며 일곱 색깔 무지개로 변하고 있었다.

아무리 꿈이었지만 황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버지는 일곱 색의 영롱한 구름을 예찬한다는 뜻으로, 아기 이름을 ‘예운(禮雲)’으로 지었다. 최선달은 예명이고 본명은 최예운이다. 최선달이 득음을 위해 석당산과 마을앞 누에머리 산에서 치열하게 노력했던 얘기도 전설처럼 전해온다.

결성농요가 1993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출전 당시에 단원은 140여명이었다. 이때 결성농요를 맨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소리꾼은 13명이었다. 13명의 소리꾼 중에서 9명이 최선달의 직계 후손들이었다. 최선달이 남겨놓은 뛰어난 명창의 피가 후손들을 통해 끈끈하게 이어지다가 결성농요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결성 성남리가 고향인 이종희(86세)님은 어린시절 마을에서 부르던 결성농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남리 내남 마을에 최광신씨 댁 마당은 밤마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던 장소였다. 이때 마을에 목청 좋은 이분석씨가 선창을 하면, 어른들이 후렴구를 부르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농요를 불렀다고 한다.

이종희님의 기억 속에는, 옛시절 마을에서 전해오던 결성농요 모습과 전하는 이야기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이처럼 결성농요는 마을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랜세월 역사와 향토성을 간직하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결성농요는 1993년 당시에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40여 명의 단원들이 6개월 동안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때 결성지역 25개 마을 전체가 한 가구씩 돌아가며 단원들에게 식사대접을 했다. 이처럼 지역민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연습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수고했다. 결성농요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은 지역민 모두의 힘이 결집된 결과물이었다.

결성지역에는 농요 전수관과 전천후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다. 1996년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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