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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⑮예산 탈해사 장수턱걸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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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⑮예산 탈해사 장수턱걸이 바위
  • 홍성신문
  • 승인 2020.07.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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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작가

우리고장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에 해발 414미터의 용굴산이 있다. 용굴산 8부 능선쯤에는 탈해사(脫解寺)가 자리잡고 있다.

탈해사는 용굴산 정상부근에 숨은 듯이 자리 잡은 절이다. 산 아래 주차장에서 탈해사까지는 험하고 가파른 아스팔트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쉽게 도착하겠지만, 워낙 가파른 길이라서 초행자는 운전이 쉽지 않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대략 30여분을 쉬지 않고 걸어야 탈해사 경내에 도착할 수 있다.

용골산 탈해사 전경

힘들게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잡념이 들어올 틈새가 없다. 탈해사라는 절 이름이 참으로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탈해사 터는 백제시대 의각스님과 첫 인연이 맺어졌다고 한다. 의각스님은 예산 금오산 기슭에 향천사를 창건한 후에, 이곳에서 잠시 참선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 명운스님이 탈해사를 창건했지만,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1970년대 중반에 이종학 주지스님이 다시 중건했다.

이종학 주지스님은 지게스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탈해사를 중건하며 산 아래에서 손수 지게로 법당 건설 자재를 운반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길도 없던 옛 시절에 무거운 자재들을 지게에 지고 오르던 고행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탈해사 서북쪽으로 가파른 산비탈에는 유명한 바위 하나가 있다. 일명 장수턱걸이바위라고 부르는데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탈해사에 도승 한 분이 살았다고 한다.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이 딸을 탈해사에 공양주로 보내어 스님의 수도생활을 돕도록 했다. 때마침 용골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한 장수가 공양주 처녀를 보았다. 장수는 처녀의 미모에 반해 엉큼한 욕심을 내었다.


탈해사 도승은 장수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당신이 저 산비탈에 있는 바위 끝에 매달려서 턱걸이 백개를 하면 공양주 처녀와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장수는 도승의 제안에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자신의 힘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지금 당장 턱걸이 백 개를 하겠습니다.”
장수는 즉석에서 대답했다. 즉시 바위 끝에 매달려서 턱걸이를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

탈해사 경내에서 바라본 장수턱걸이바위

처음 시작은 턱걸이 백 개를 거뜬히 해낼 것 같았다. 하지만 여든 개를 넘기고 아흔 개가 넘어가면서 장수의 숨이 차오르고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며 간신히 아흔 아홉 개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개를 남겨놓고는 몸의 힘이 모두 소진되고 말았다.
장수는 더 이상 바위에 매달려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바위에 매달렸던 손을 놓고 말았다.

“아아아아아…….”

장수가 바위에서 떨어지며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장수는 안타깝게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후로 장수가 매달렸던 바위 이름은 ‘장수턱걸이바위’가 되었다.

장수턱걸이 바위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모습이 각각 다르게 보인다. 이런 이유로 바위 이름도 재미있고 다양하게 전해온다. 장수턱걸이 바위, 작대기 바위, 가세바위, 소혀바위, 쉰질바위, 용바위 등으로 부른다.

용골산 탈해사 가파른 산언덕에 자리잡은 바위는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산 아래로는 수철리 저수지와 마을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바위에서 떨어지던 장수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산 계곡을 뒤흔들며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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