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청년 마을조사단에서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성 지역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조사 : 글 김옥선, 이은정
우리나라 양봉은 기록상으로는 고구려 동명성왕 때 인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민족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르러 양봉이 발달, 조선 숙종 때 흥만선(供萬選)이 지은 ‘산림경제’에 양봉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때부터 사대부층에서 양봉기술을 보급하게 되고 꿀벌 기르기와 채밀 방법을 지도할 수 있는 양봉기술서가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1930년대를양봉의 황금기라 일컫는다. 벌꿀의 용도가다양화되고 수요층도 확산됐다.
구래에 사는 심창섭 씨가 양봉을 시작한 지는 15년 정도 됐다고 한다.
“당질이 양봉을 하는데 해보고 싶다고 하니 벌 2통을 줬다. 그런데 그 때 서울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어 다녀왔는데 그 사이 눈이 많이 왔다. 돌아와 보니 모두 얼어 죽었다. 첫 해는 실패한 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양봉은 현재 아카시아 꿀, 잡꿀, 밤꿀을 생산해 판매한다. 아카시아 꿀은 6월경, 잡꿀은 이른 봄, 밤꿀은 밤꽃이 지면 채취한다.
현재 심 씨는 50군의 벌을 키우고 있다. 벌통을 ‘궤상’이라고 하는데 궤상에 빈 섬을 7~10장 정도 넣어준다. 빈 섬은 냉동실에 보관해 사용한다. 섭과 섭 사이에 밥통을 넣는다. 겨울에는 밥통에 설탕물을 넣어준다. 새끼를 까지 않은 판은 이층으로 올리고 그 사이에 격왕판을 놓아 여왕벌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다. 이렇게 생산된 꿀은 대량 생산 양봉농가의 경우 기계를 돌려 수분을 날린다. 꿀의 농도를 18~19도로 맞추기 위함이다. 심 씨는 변질되지 않도록 벌이 스스로 날개짓을 통해 수분을 증발시킨후 밀랍으로 봉해 숙성 된 꿀을 생산한다.
“벌집에는 수 천 마리가 들어 있는데 왕은 딱 하나다. 복잡해지면 벌이 왕대(알을 낳는 방)를 스스로 짓는다. 왕대는 크기가 2cm, 두께 1cm다. 왕이 알을 낳으며 부화된 신왕이 벌들 중 가장 강한 놈을 데리고 나온다. 왕이 강한 놈을 데리고 가는 이유는 새로운 나라를 개척해야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그 때 사람이 할 일은 나무에 붙은 벌집을 따서 얼른 통에 넣는 것이다. 그게 가장 좋은 벌이다.”
현대 물리학의 혁명가라 불리는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그로부터 4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꿀벌의 세계는 그만큼 정교하고 복잡하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이 열매를 맺기 어려워 과일도 먹을 수 없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식량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꿀벌이 먼저인지, 식물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둘이 공존해 세상의 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