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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객사에서 맺어진 관리와 관기들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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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객사에서 맺어진 관리와 관기들의 일화
  • 홍성신문
  • 승인 2020.06.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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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⑪

우리나라 역사상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나간 관리들과 지방 관아에 속했던 관기들의 사랑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홍주읍성은 홍주목의 중심 관아였으므로, 이곳 객사에 머물렀던 관리들과 기생들의 일화가 많이 전해올 듯도 하다. 하지만 참으로 아쉬운 것은, 다른 지역 큰 고을에비해서 홍주목의 기생이야기는 많지 않다. 옛 문신들의 문집에서 띄엄띄엄 발견될 뿐이다.

허균이 홍주객사에 머물렀던 기록
홍길동전으로 유명했던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에 홍주목 객사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서해안 지역에 보관중인 세곡을 감독하기 위해 조운관(漕運官)으로 순회하며 홍주객사에서 묵어간 적이 있었다. 이때 홍주목사가 베풀어준 연회에 참석하고 밤에 객사에 머물렀던 기록이 전한다.

이 내용은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 18권의 기행상(紀行上) 편 ‘조관기행(漕官紀行)’에 기록된 내용이다. 조관기행의 서두에 “신축년(1601) 6월에 가부낭관으로 있던 나는 전운판관(轉運判官)에 제수되어 삼창(三倉)에 가서 조운(漕運)을 감독하게 되었다.”로 시작된다. 6월 17일에 홍주객사에 머물렀던 기록은 다음과 같다.

홍성군청 안에 위치한 안회당 모습(홍주목사가 집무하던 동헌)

홍주(洪州)에 이르러 동상(東廂, 관아 동쪽에 있는 방)에서 잠깐 쉬는데, 벌목관(伐木官) 박경현(朴景賢) 형이 아헌(衙軒)에 와서 아전을 보내어 어느 방에 묵을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그가 동상에 들어오려는 것을 알고는 따지지 않고 지름길로 바로 아헌에 이르니, 박경현과 목사 우복룡(禹伏龍) 공이 벌써 연회를 시작하고 소리하는 기녀들이 앞에 가득하였다. 나는 취중에,
“목사는 내 형님과 같으시니 아헌에서 며칠 머물렀으면 하는데, 이곳으로 옮겨와도 되겠습니까?”하고 청하니, 목사가 쾌히 승낙하였다. 저녁에 박(朴)은 동상으로 옮겨 갔다. 밤에 박의 방에 들어가야 할 기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잘못 들어왔으므로 쫓아 보내고, 수기(首妓)에게 곤장 수십 대를 때렸다.

조선시대 문신 심수경이 홍주객사에 머물렀던 기록
조선시대 문신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閒雜錄)’ 에도 홍주객사와 기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심수경은 홍주객사에 와서 기생과 어울렸던 이야기를 견한잡록에 기록해놓았다.

내가 기미년(1559년) 봄에 충청감사에 임명되어 호서(湖西)로 갔다. 참판 권응창(權應昌)이 또한 홍주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서제(庶弟)인 송계(松溪) 권응인(權應仁)이 따라왔다. 홍주에 도착하던 날 송계가 교방(敎坊)의 기요로서 율시 두 수를 지어 올렸는데, 끝구에

인생은 남북 가릴 것 없이 큰 뜻에 맞게 행동하는 것선연동 안의 넋은 되지 마오
人生敵意無南北 莫作嬋娟洞裏魂
*선연동 : 평양에 있는 기생들의 무덤

했으니 실로 의미가 있었다.
이때 내가 홍주기생 옥루선(玉樓仙)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는데, 송계의 시가 징험(徵驗;어떤 징조를 경험함)이 되었다. 내가 홍주로 가서 시 한 수를 지어주었는데, 즉

앉아서 동풍 향하니 남모르게 애타고
창 앞에 지저귀는 새소리 견디기 어렵네
이별의 시간 많고 만나는 시간 적은데 봄은 저물고
길은 멀고 편지는 드문데 날은 저물고
은하수에 오작교 있다는 말 믿어지지 않아

무협(巫峽)에 구름 없다는 말 의심스럽네
이 정회 펴려 하니 또다시 쓸쓸해져
부질없이 쇠화로를 대하여 저녁볕과 바꾸네

坐向東風暗斷魂  窓前啼鳥不堪聞
離多合小春將晩  路遠書稀日慾曛
未信星橋曾有鵲  却疑巫峽更無雲
此情慾寫還恫悵  空對金爐換夕薰

 했다. 그밖에도 많은 시를 지어주어 시축(詩軸, 시를 적은 두루마리))을 이루었다.

만력(萬曆) 계사년(1593년) 봄에 내가 홍주에 이르러서 옥루선의 존몰(存沒)을 물었는데 아직도 시골동네에 살아있고, 시축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시축을 가져오게 해서 보고 발문(跋文)을 덧붙여서 돌려보냈다. 손꼽아 계산해 보니 기미년(1559년)에서 계사년(1593년)까지 3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내 나이 78세인데, 이처럼 먼 지방에 다시 오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위 글은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실려 있음)

견한잡록을 쓴 심수경은 조선 중기에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견한잡록은 자신이 평생동안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쓴 수필집이다. 조선시대 상층문화의 동향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위 글의 내용으로 보아, 충청감사시절에 홍주목에 와서 옥루선이라는 기생과 인연을 맺었던 듯하다. 홍주객사에 머물며 옥루선과 함께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다. 35년이 지난 후에 다시 홍주목에 들러서 옥루선의 안부를 물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다. 소식을 전했더니 옛날에 서로 주고받았던 시축을 갖고 있으므로, 다시 가져다가 발문을 써서 보냈다는 이야기다.

심수경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여러 직책을 부여받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객사에 머물며 기생들과 어울렸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옛날 관리들은 자신의 문집 속에 여러 기생들과 어울렸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기록해 놓았다. 아마도 당시에는 이런 행동들이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김정헌 작가는 구항초등학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직하고 현재 내포구비문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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