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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면 송암리 구암마을 - 마을 톺아보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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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면 송암리 구암마을 - 마을 톺아보기 ①
  • 홍성신문
  • 승인 2020.05.3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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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말하다
1반 김성골 전경.

금마면 송암리 구암마을은 북동쪽에 위치한 철마산과 남서쪽으로 퇴뫼산 사이 너른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금마면 덕정리와 부평리, 동남쪽으로 금마면 용흥리, 서쪽으로 금마면 신곡리, 남쪽으로는 금마면 송암리 와야마을, 북쪽으로 금마면 죽림리와 경계를 이룬다. 예전에는 철마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하천을 이뤄 마을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흘러 홍양저수지로 흘러 들어갔으나 현재 하천 수량은 미미한 상태다.

법정리인 송암리는 송암1리와 2리로 편제되어 있는데 구암은 송암1리, 와아는 송암2리로 구분한다. 구암마을은 김성골과 구래, 소래울 3개 자연마을로 이뤄지며 각각 1반과 2반, 3반으로 구성된다.

마을이 가장 번성했던 1970년대는 전체가구가 58가구, 인구 300여명에 이르렀으나 서서히 줄어들어 현재 44가구, 인구 100명이 거주한다. 구래 13가구, 김성골 13가구, 소래울 18가구가 거주한다. 이밖에 귀촌가구 2가구, 귀향가구 2가구, 귀농가구 1가구, 혼자 사는 가구는 5가구다. 어린이 및 청소년 인구는 어린이집 원아 2명, 초등학생 2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 3명이다. 마을 내 남성 최고령자는 1935년생 박복영 씨며, 여성 최고령자는 1927년생 이기순 씨다.

마을의 주요 경제활동은 농업으로 논은 약 4만8000평(158,677.7m2), 밭은 약 7만5600평(249,917.4m2)이다. 100두 미만 소를 키우는 복합농 가구는 7가구, 100두 이상 축산 농가는 1가구다. 농업과 농업 외 소득으로 직장 재직을 겸하는 겸업농가는 12가구다. 1960년대 양잠 및 담배를 대체하는 작물로 옥수수를 심기 시작해 대부분의 농가에서 재배했고, 20년 전에는 20여 가구, 현재는 15가구가 재배한다.

가족(家族)의 사전적 의미는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가족의 한자를 살펴보면 가家’는 집 면宀자에 돼지 시家를 쓴다. 돼지가 사방이 지붕으로 덮어 씌워져 있는 집에 들어가 있다는 의미다. ‘족族은 모 방方자에 화살 시失가 더해진다. ‘방’ 은 방위, 곳, 장소를 의미하며, ‘시’는 화살이라는 뜻 이외에 ‘대변’, ‘베풀다’, ‘정직하다’는 의미가 있다. 풀이하면 복(福)을 상징하는 돼지가 집안에서 서로에게 정직함과 베푸는 관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변하면서 현재 가족의 형태는 핵가족이 대부분이다. 여성가족부가 2010년에 발표한 제2차 가족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조사 대상 2500가구 중 90.2%는 모든 가족원이 거주하며, 이 중 9.8%는 비동거 가족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평균 가족원수는 2.9명이며, 동거하고 있는 가족원수는 2.8명이고, 0.1명의 가족원은 출타해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다.

이밖에 통계청이 실시한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친족가구의 세대별 구성을 알 수 있다. 일반 가구17,339,000가구 중 1인 가구와 비친족 가구를 제외하면 친족 가구는 74.9%다. 이 중 1세대는 17.5%, 2세대, 51.3%, 3세대 6.1%, 4세대 0.1%로 나타난다. 이는 현재 가족 구성원의 변화 추이를 엿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1970년대만 해도 농촌의 한 가정에서는 3세대 혹은 4세대가 함께 사는 풍경이 흔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근대 산업화로 변화되면서 가족의 변화와 함께 가족에 대한 의식도 변화됐다.

구암마을에는 3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이 4가구다. 구래에 거주하는 권영국, 윤세강 씨와 김성골에 거주하는 최제묵 씨, 소래울에 거주하는 심재설 씨 가족이다.

최제묵 씨 가족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왼쪽부터 김명숙, 최제묵, 김동순, 최 은, 최 별, 최영진 군.

1973년생 최제묵 씨는 부인 김명숙 씨와 홍주고등학교 2학년 최영진 군, 청양고등학교 1학년 최 별, 금마중학교 2학년 최 은 양과 모친인 김동순 씨가 한지붕 아래 기거한다. 고(故) 최기호 씨와 김동순 씨는 슬하에 2남3녀를 뒀다. 그 중 막내 아들인 최제묵 씨는 부친인 고(故) 최기호 씨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자녀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직장이 이 근처고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생각으로 들어왔다.”
금마농협에 근무하는 최제묵 씨와 금마초등학교 배움터 지킴이를 하고 있는 김명숙 씨는 오히려 모친의 도움을 받으며 산다고 한다. 김명숙 씨는 “은이가 여섯 살 무렵에 들어왔으니 9년 정도 됐다.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시고 아이들도 안정적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청양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최별 양은 주말에만 집에 온다. 얼마 전 중국으로 여행을 간 최별 양은 할머니에게 중국으로 떠나기 전 매 시간 전화를 한다. ‘공항에 도착했다’, ‘조금 있으면 출발한다’, ‘잘 다녀오겠다’ 등의 인사를 할머니에게 건넨다.

김동순 씨는 “영진이와 별이가 연년생이라 영진이를 내가 업어 키웠다. 조끼도 내가 직접 떠서 옷도 해 입혔다. 그바람에 별이가 빨리 걸음을 뗐다”라며 “남편 떠나고 아들과 함께 하니 부족함 없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조사, 글 김옥선,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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