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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2월 - 1830년 5월 사이에 그려진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그린 동궐도(東闕圖)
icon 김민수
icon 2015-05-27 13:34:16  |   icon 조회: 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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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2월 - 1830년 5월 사이에 그려진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그린 동궐도(東闕圖)





화원들이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을 부감법(俯瞰法)으로 나눠그린 동궐도(東闕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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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東闕圖)는 1827년 2월 - 1830년 5월 사이의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에 도화서 화원들이 한성(漢城:1395년 6월 한성 개칭 이후 태묘,경복궁,한성 낙성)의 동쪽에 위치한 동궐(東闕)인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의 전각 및 궁궐 전경을 사물을 정면이 아니라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듯이 그리는 부감법(俯瞰法)으로 나눠그린 궁궐 배치도이며 비단에 채색한 것이고 16첩 병풍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576㎝, 세로 273㎝이고 입체감이 나도록 조감도(鳥瞰圖)로 그려 자연의 구릉과 능선,넓고 깊은 연못 지(池), 좁고 얕은 연못인 당(塘),전통 수목,화목을 심은 계단인 화계,궁궐의 담장인 궁장,전각,일식과 월식에 구식하고 등가 설치하는 월대,어도,궐내각사(闕內各司),정자,화장실 측간(廁間),간장,된장,고추장의 장독,침채와 침장을 저장하는 침장고,소금창고인 염고,경비초소 파수간(把手間),나무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땅에 박고 가로로 인방을 보낸 후 여기에 널판장을 붙인 판장(板墻),버들고리덩굴생울타리 취병(翠屛),과학기기,화재 예방을 위해 설치한 드므, 약방에서 탕약 달이는 약탕기인 은관,추위를 막기 위하여 문에 치는 휘장인 문염자(門簾子),등촉을 관리한 등촉방, 차일과 휘장을 친 배설방,희정당,수정전 마당을 불밝힌 석등,금천교,말에서 내리는 하마석과 말을 매어두는 계마목 등이 생생하며 건물과 기물마다 먹으로 이름이 씌어 있다.







1790년 1월 1일 통명전(通明殿)에 불이 났다.1824년 8월 24일 창덕궁(昌德宮)의 경복전(景福殿)이 불탔다. 중궁전(中宮殿)의 교명(敎命)과 옥책(玉冊)을 경복전에 봉안해 두었는데 창황히 받들어 꺼내느라 손상이 많았다. 1830년(순조 30) 8월 1일에 오시(午時)에 빈전(殯殿) 환경전(歡慶殿)에 화재(火災)가 나서 함인정(涵仁亭)·공묵합(恭默閤)·경춘전(景春殿)·숭문당(崇文堂)·영춘헌(迎春軒)·오행각(五行閣)·빈양문(賓陽門)을 연달아 태웠다.1830년(순조 30) 8월 1일에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이 불탔다고 하였는데 동궐도에는 환경전이 그려져 있어 1830년 8월 이전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창덕궁 상림원 내의 어진을 봉안한 연경당(演慶堂)이 1827년(순조 27)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궐도에는 연경당이 있으므로 1827년 이후에 그려진 것이다. 1827년 2월 9일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代理廳政)을 명하였다. 1830년 5월 6일 묘시(卯時)에 대리청정하는 효명세자가 창덕궁의 희정당에서 훙서(薨逝)하였다.동궐도는 효명세자가 대리청정(代理廳政)을 시작한 1827년 2월 이후부터 대리청정하는 효명세자가 훙서(薨逝)하기 전인 1830년 5월까지의 기간 중에 그려진 것이다.







조선국 도읍 한성(漢城)의 동쪽에 창건한 동궐(東闕) 창덕궁(昌德宮)은 큰 종을 주조하여 매달은 정문 돈화문(敦化門),대신들이 궐내각사로 출입한 서행랑문(西行廊門)인 금호문(金虎門),금호문 안에 얼음을 저장하는 내빙고,공식 의례와 조회(朝會)를 행하는 정전(正殿) 인정전(仁政殿),국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便殿) 선정전(宣政殿),국왕의 생활, 침식 공간인 대전(大殿) 희정당(熙政堂),왕후가 생활하는 중궁전(中宮殿) 대조전(大造殿),왕세자가 생활하는 동궁전(東宮殿) 중희당(重熙堂),세자에게 학문을 강학하는 성정각(誠正閣), 세자시강원 춘방과 세자익위사 계방,왕실 도서관 승화루(承華樓),세자의 사무 공간 시민당(時敏堂),효장세자(진종)가 훙서한 진수당(進修堂), 대리청정(代理聽政)한 효명세자(문조)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진작례(進爵禮)를 거행한 연경당(演慶堂)이 있다.









내전(內殿) 대조전(大造殿)의 청와로 번와한 부속건물인 경훈각(景薰閣),집상전(集祥殿),성종이 경연(經筵)을 한 보경당(寶慶堂),고조 광무제가 대신을 소견하고 외교관을 접견한 낙선재(樂善齋),완흥군 이희(李熹)의 상(喪)에 망곡(望哭)을 행한 석복헌(錫福軒),정조가 응제시 무과에 회방(回榜)한 사람들을 소견한 수강재(壽康齋),어진(御眞)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선원전 재실 양지당(養志堂), 대비전(大妃殿) 만수전(萬壽殿),부속 건물 인원왕후가 승하(昇遐)한 영모당(永慕堂),어원(御園) 상림원(上林苑)은 과거시험장 영화당(暎花棠),서재 기오헌(寄傲軒), 순조가 교리 홍의영(洪儀泳)과 수찬 이정병(李鼎秉)을 소견하고 심경(心經)을 강독한 태극정(太極亭), 소요정(逍遙亭), 취한정(翠寒亭), 정조가 재숙(齋宿)을 한 농산정(籠山亭), 황태자 이척이 일시적으로 모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실제의 가게처럼 꾸민 음식점인 모의점(模擬店)을 설치한 취규정(聚奎亭),정조가 각신(閣臣)들과 낚시를 한 수택재(水澤齋)인 부용정(芙蓉亭),효명세자가 이문 제술(吏文製述),한학 문신강(漢學文臣講)을 행한 어수당(魚水堂),중종이 양로연(養老宴)을 행한 애련정(愛蓮亭), 청심정(淸心亭), 승재정(勝在亭), 태학 유생(太學 儒生)의 응강(應講)을 행한 존덕정(尊德亭), 관람정(觀纜亭), 농수정(濃繡亭), 왕비가 내외명부(內外命婦)를 거느리고 친잠례(親蠶禮)를 행하는 채상단(採桑檀)이 있다.









3정승과 정2품 이상 고위 관직자가 모여 중요한 안건을 협의한 빈청(賓廳),사헌부(상대)나 사간원(미원)의 벼슬아치들이 국왕에게 아뢸 일을 의논하던 대청(臺廳), 이조(吏曹)나 병조(兵曹)의 전관(銓官)이 도목정사(都目政事)를 보던 정청(政廳)과 어명 출납(出納)과 관보 발행하는 승정원(承政院),사관의 사초(史草)를 수집하여 실록청에서 실록을 편찬하는 춘추관(春秋館),국정 자문,간쟁하는 홍문관(弘文館),문서 제술,사초(史草) 기록하는 예문관(藝文館),어제와 어필을 보관하고 학술 연구하는 규장각(奎章閣),서적의 수집과 출판을 담당한 검서청(檢書廳),궁중(宮中)의 의약(醫藥)을 맡은 내의원(內醫院),내의원(內醫院)에 속하는 억석루(憶昔樓),궁중에 자기와 음식을 공급하는 사옹원(司甕院),내시(內侍)들이 근무하는 내반원(內班院),국왕의 의복과 궁내의 재화(財貨)·금은·보물 등을 관리하는 상의원 (尙衣院),관인(官印) 꼭지의 끈인 인수(印綬)와 관(冠)을 관리하는 불면각(紱冕閣),평교자를 관리하는 교자고의 궐내각사(闕內各司)가 있다.









창경궁(昌慶宮)은 의례 공간인 정전 명정전(明政殿),국왕 사무 공간 편전 문정전(文政殿),강학 공간 숭문당(崇文堂),중궁전 통명전(通明殿),대비전 자경전(慈慶殿),세자 강학 공간 신독재(愼獨齋),내전 환경전(歡慶殿),정조가 탄강한 경춘전(景春殿), 혼전(魂殿) 통화전(通和殿), 인조가 칙사(勅使)를 접견하고 철인왕후가 승하한 양화당(養和堂), 약방(藥房)에서 숙종을 입진(入診)한 연희당(延禧堂), 현빈(효순왕후)이 훙서한 건극당(建極堂),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정을 살피는 권농장(勸農場)인 내농포(內農圃), 영조,정조가 추수하는 광경을 친히 관람한 관풍각(觀豊閣),어원(御園) 함춘원(含春苑), 정문 홍화문(弘化門),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훙서한 선인문(宣仁門),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을 전배하기 위해 만든 월근문(月覲門),임금이 성균관(成均館)의 문묘(文廟) 참배 시에 사용하는 집춘문(集春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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