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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화/백월산 산신이 된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
 닉네임 : 홍성 타임즈  2007-06-05 15:51:01   조회: 4586   
 첨부 : 홍성읍3.jpg (30462 Byte) 
역사적으로 훌륭한 업적이 있는 인물들을 보면, 그 업적과 넋을 기리는 사당이 많이 있다.

우리고장의 대표적인 충절인물 중에는 최영 장군의 사당이 전국에 많이 있다. 최영 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진 홍북면 노은리에 사당이 있고, 북제주군 추자읍 대서리와 남해 미조리 항에도 “무민사”라는 사당이 있다. 통영시 시량면에도 최영 장군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대개 최영 장군이 외적을 물리치고 큰공을 세우거나, 그 지방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던 곳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최영 장군은 특히 무속신앙에서 장군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최영 장군의 사후에도 위대한 능력을 신처럼 믿고 의지하려는 생각과 함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로하려는 뜻도 담겨있을 것이다.

최영 장군이 전국 곳곳에서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반면에, 우리고장 홍성에도 신으로 모셔지며 전국 각지에서 많은 무속인들이 찾아오는 사당이 있다. 바로 백월산 정상에 세워진 홍주목사 홍가신 사당이다.

홍가신은 홍주목사로 재임하던 1596년에 발생했던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분이다.

이몽학은 서얼 출신으로서 사람들의 냉대를 받고 살면서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인물이다.

이몽학은 왜군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임진왜란과 대기근으로 굶주린 농민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명분은 “왜적의 침략을 막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이 해는 임진왜란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어려운 시기였다. 나라에서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할 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몽학은 이 틈을 타서 불만세력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킨 것이다.

반란군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넓혀갔다. 삽시간에 수천의 무리가 되었다. 홍산을 점령하여 무기를 탈취한 후에, 정산·청양·대흥을 휩쓸고 홍주를 향해 쳐들어왔다.

홍주목사 홍가신은 급박한 소식을 접하면서 침착하게 대응했다. 박명현, 최 호, 신경행, 임득의 장군과 함께 힘을 합하여 이몽학의 반란군을 평정하였다. 1개월간 파죽지세로 세력을 넓히며 서울로 향하던 반란군은, 홍주에서 홍가신에 의해 완전히 진압되었다.

홍주목사 홍가신은, 1604년에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박명현과 최 호는 청난공신 2등에, 신경행과 임득의는 청난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청난공신이란, 어려운 시기에 세상을 깨끗하게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홍가신은 그후에도 주민들이 학질 등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마다 특유의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홍가신을 신처럼 받들게 되었으며, 그 뜻을 기리고자 사당을 짓게 되었다.

백월산 정상에 자리잡은 홍가신 사당은 1618년에 처음 세워졌다. 사당의 중앙에는 ‘백월산신지위’라는 위패가 있고, 오른쪽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5명의 위패가 있다.

중앙 오른쪽에는 목상 다섯 개가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다. 맨가운데 목상은 나이든 남자상으로 제일 크다. 남자상 오른쪽으로는 작고 앳된 남자상이 있다. 왼쪽으로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인상 두 개가 있다. 이 다섯 개의 목상은 380여년 전에 밤나무로 만들어 세운 것인데, 홍가신의 어머니와 부인, 아들과 딸이라고 한다.

이 사당의 이름을 처음에는 ‘홍주청난사(洪州淸難祠)’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홍후만전묘(洪候晩全廟)’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홍가신 사당은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백월산은 신의 영기가 높은 곳으로 무속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사당 안에서 무속인과 신도들이 찾아와 며칠씩 묵으면서 제물을 차려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당 왼쪽 진열대 밑으로는 땅에 반쯤 묻힌 맷돌바위가 하나 있다. 소
원을 빌면서 작은 돌을 맷돌 돌리듯 문지르면, 어느 순간에 돌이 맷돌에 붙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홍가신 사당에서는 해마다 정초에 오관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 백월산신제가 있다. 이 산신제는 홍성읍민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홍성읍장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단체장들도 함께 참여한다. 이외에도 홍성읍 월산리 주민들과, 구항면 오봉리 주민들도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홍가신은 살아서는 홍주목사로서 주민들을 보호했고, 죽은 후에는 백월산의 산신이 되어, 홍성인의 정신을 한데 모으며 고난을 극복해 가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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